5년차 AE,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5년차 AE,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5년차 AE,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5년이면 충분하다는데 출근했다. 또 대시보드를 켰다. CPA 11,500원. ROAS 430%. 예산 소진율 87%. 숫자는 괜찮다. 근데 뭔가 공허하다. 동기 민지가 슬랙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나 이직 준비 중이야." 세 번째다. 올해만. 에이전시 5년차가 되면 다들 이렇게 된다. 점심 먹으면서 물었다. "어디로 가려고?" 민지가 말했다. "브랜드사 인하우스. 더 이상 못 버티겠어." 나도 안다. 에이전시 5년이면 한계다. 체력이 먼저 간다. 야근은 일상이고, 광고주 눈치는 매일이다. 문제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거다.선택지는 세 개 에이전시 AE가 5년차쯤 되면 갈림길이 보인다. 첫 번째, 클라이언트사 인하우스 마케터. 두 번째, 더 큰 에이전시. 세 번째, 스타트업 마케터. 각각 장단점이 있다. 명확하다. 클라이언트사는 안정적이다. 야근이 덜하다. 한 브랜드만 파면 된다. 연봉도 올라간다. 내가 담당하는 광고주 마케팅팀장 연봉이 7천만원이라고 들었다. 큰 에이전시는 커리어가 확실하다. 대행사 이름값이 있다. 글로벌 캠페인 경험할 수 있다. 연봉은 비슷한데 이력서에 쓸 만하다. 스타트업은 자유롭다. 빠르게 의사결정 된다. 주식도 준다. 물론 언제 가치가 생길지 모르지만. 문제는 각각 다 포기해야 할 게 있다는 거다. 클라이언트사를 생각하면 광고주 마케팅팀에서 연락이 왔다. 신규 캠페인 브리핑이다. 회의하면서 생각했다. 저쪽 입장이 되면 어떨까. 장점은 명확하다. 더 이상 광고주 눈치 안 봐도 된다. 내가 광고주니까. 에이전시한테 요구하는 입장이 된다. 야근도 줄어든다. 캠페인 라이브 날에도 에이전시가 모니터링 한다. 나는 리포트만 받으면 된다. 한 브랜드만 깊게 판다. 브랜드 전략부터 세울 수 있다. 단순히 퍼포먼스만이 아니라. 연봉도 오른다. 5년차 에이전시 AE는 5천만원 정도다. 클라이언트사 마케터는 6천에서 시작한다. 근데 단점도 있다. 회사 정치가 복잡하다. 에이전시는 실적이 전부다. 숫자가 말해준다. 근데 대기업은 다르다. 윗사람 눈에 들어야 한다. 의사결정이 느리다. 에이전시는 빠르다. 광고주 오케이만 나오면 바로 집행한다. 근데 인하우스는 결재 라인이 길다. 업무 범위가 좁아진다. 한 브랜드만 본다. 다양한 산업 경험은 못 한다. 커리어가 그 회사에 갇힌다. 제일 무서운 건 에이전시 출신을 무시하는 문화다. "대행사 출신은 전략이 약해" 이런 소리. 실제로 듣는다.더 큰 에이전시를 보면 동기 재훈이는 작년에 이직했다. 직원 60명 에이전시에서 300명 에이전시로. "어때?" 물었다. 재훈이 말했다. "프로젝트는 확실히 크긴 해." 큰 에이전시는 이름값이 있다. 이력서에 쓰면 좋다. 채용공고에 "대형 대행사 경력자 우대" 이런 거 자주 본다. 다루는 예산 규모가 크다. 우리 에이전시는 월 3천만원 광고주가 큰 거다. 큰 에이전시는 월 3억이 기본이다. 글로벌 캠페인도 할 수 있다. 해외 지사랑 협업한다. 커리어에 확실히 도움 된다. 시스템이 체계적이다. 교육도 있고, 승진 기준도 명확하다. 근데 재훈이가 말했다. "대신 내가 하는 일은 더 작아졌어." 큰 에이전시는 분업이 철저하다. AE는 정말 클라이언트 응대만 한다. 기획은 플래너, 미디어는 미디어팀, 크리에이티브는 디자인팀. 작은 에이전시는 다 해본다. AE가 기획도 하고, 미디어도 보고, 크리에이티브도 피드백 준다. 큰 에이전시는 그게 없다. 전문성은 높아지는데, 범위는 좁아진다. 그리고 정치가 있다. 작은 에이전시는 실적이면 된다. 큰 에이전시는 팀장 눈치, 본부장 눈치 다 봐야 한다. 연봉도 생각보다 안 오른다. 이름값만 바뀌고 돈은 비슷하다. 스타트업은 어떨까 지난달에 스타트업 마케터 JD를 봤다. 연봉 6천, 스톡옵션 0.1%. 솔직히 끌렸다. 스타트업은 빠르다. 회의에서 결정하면 다음 날 바로 집행한다. 에이전시보다 빠르다. 자율성이 있다. 내가 전략 짜고, 내가 집행하고, 내가 성과 본다. 누구 눈치 안 봐도 된다. 성장 가능성이 있다. 스톡옵션이 실제로 가치 생기면 목돈 된다. 물론 확률은 낮지만. 배우는 게 많다. 퍼포먼스만이 아니라 브랜딩도 하고, PR도 하고, 심지어 CS도 본다. 근데 리스크가 크다. 스타트업 망하면 경력 공백 생긴다. 1년 다니다가 회사 문 닫으면 다시 이직 준비해야 한다. 야근은 더 심할 수 있다. 에이전시는 그래도 광고주 퇴근하면 우리도 퇴근한다. 스타트업은 24시간이 캠페인이다. 시스템이 없다. 교육도 없고, 매뉴얼도 없다. 다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연봉은 높은데 복지는 없다. 에이전시는 그래도 4대보험, 퇴직금 확실하다. 스타트업은 기본급 낮고 인센티브로 채운다. 제일 무서운 건 스톡옵션이 휴지조각 될 확률이다. 0.1%가 10억이 될 수도 있고, 0원이 될 수도 있다.나는 뭘 원하는 걸까 퇴근하고 남자친구를 만났다. 준혁이도 에이전시 5년차다. "너는 어떻게 할 거야?" 물었다. 준혁이가 말했다. "아직 모르겠어. 근데 확실한 건 뭔가 바꿔야 한다는 거." 맞다. 이대로는 못 버틴다. 문제는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는 거다. 돈을 원하는 건가. 그럼 클라이언트사나 스타트업이다. 커리어를 원하는 건가. 그럼 큰 에이전시다. 워라밸을 원하는 건가. 그럼 클라이언트사다. 자유를 원하는 건가. 그럼 스타트업이다. 근데 다 원한다. 돈도, 커리어도, 워라밸도, 자유도. 그런 건 없다는 걸 안다. 결국 포기의 문제 집에 와서 노트북을 켰다. 링크드인을 봤다. 동기들이 이직 소식을 올렸다. 민지는 대기업 인하우스, 재훈이는 큰 에이전시, 수진이는 스타트업. 다들 자기 선택에 만족한다고 썼다. 근데 술 마시면 다들 불평한다. 민지는 회사 정치가 싫고, 재훈이는 일이 재미없고, 수진이는 야근이 심하다고. 결국 완벽한 선택은 없다. 클라이언트사 가면 정치와 느린 의사결정 감수해야 한다. 큰 에이전시 가면 좁아진 업무 범위 감수해야 한다. 스타트업 가면 불안정성 감수해야 한다. 뭘 포기할 수 있는지가 기준이다. 나는 뭘 포기할 수 있을까. 광고주 눈치는 이제 지겹다. 야근도 지겹다. 근데 다양한 프로젝트는 좋다. 빠르게 실행하는 것도 좋다. 아직 모르겠다. 일단 준비는 해야 한다 오늘 이력서를 다시 썼다. 5년 동안 뭘 했는지 정리했다. 담당 광고주 3개, 총 집행 광고비 12억, 평균 ROAS 380%. 포트폴리오도 만들었다. 잘 나간 캠페인 5개. 성과 수치 다 넣었다. 링크드인 프로필도 업데이트했다. 헤드헌터 연락 오라고. 일단 옵션을 만들어야 한다. 선택지가 있어야 고를 수 있다. 지금 회사가 나쁜 건 아니다. 동료들도 좋고, 광고주도 괜찮다. 근데 5년이면 충분하다. 더 있으면 안 된다. 에이전시 7년차, 8년차는 이직이 더 어렵다. "왜 이제까지 에이전시만 있었어요?" 이런 질문 받는다. 지금이 타이밍이다. 어디로 갈지는 아직 모른다. 근데 움직이긴 해야 한다. 내일 헤드헌터한테 연락할 거다. 어떤 기회가 있는지 물어볼 거다. 다음 주에는 동기 민지 만나서 클라이언트사 얘기 들을 거다. 준혁이도 만나서 같이 고민할 거다. 한 달 안에 방향은 정할 거다. 5년차 AE.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정답은 모른다. 근데 여기 계속 있는 건 답이 아니다.5년이면 충분하다. 이제 다음으로 가야 한다. 어디로든.

좋은 성과가 나왔다, 슬랙에 캡처 공유하는 그 쾌감

좋은 성과가 나왔다, 슬랙에 캡처 공유하는 그 쾌감

아침 10시, ROAS 278%출근해서 대시보드 켰다. ROAS 278%. 눈 비볐다. 다시 봤다. 278%. 어제 밤 11시까지 광고 소재 10개 교체했다. CPA가 계속 올라가서 광고주한테 뭐라고 말할지 고민하다가 소재 문제일 거 같아서 디자이너한테 급하게 부탁했다. "내일 아침까지만요" 했더니 한숨 쉬면서 해줬다. 그게 먹혔다. 전환수 어제 대비 340%. 클릭률 2.8%에서 4.1%로. CPA는 32,000원에서 19,000원으로. 손 떨렸다. 캡처했다. 슬랙 열었다. 슬랙에 올리는 순간"오늘 아침 성과 공유드립니다🔥" 캡처 세 장 올렸다. 대시보드, 전환 그래프, 소재별 성과. 3초 만에 이모지 달렸다. 👍 🔥 💯 대표님이 제일 먼저. "굿!!" 그 다음 팀장. "오 이거 뭐 했어요?" 디자이너. "헐 대박" 미디어플래너. "이 소재였구나" 다른 AE들도 축하 이모지 줬다. 다들 자기 일로 바쁜데도. 이 순간이 좋다. 광고주 보고 오전 11시에 광고주한테 카톡 보냈다. "안녕하세요, 어제 소재 교체 후 성과 급상승했습니다. ROAS 278% 찍었어요!" 캡처 두 장 첨부. 1분 만에 답장. "오 좋네요!! 이 소재 예산 더 태워주세요" "네 바로 반영하겠습니다👌" 이런 대화가 얼마나 오랜만인지. 보통은 "CPA 왜 올랐어요?", "경쟁사는 더 잘 나온대요", "예산 대비 효율 안 나오는데요" 이런 거였다. 지난주만 해도 광고주 담당자가 "다른 에이전시 검토 중이에요"라고 했다. 그때 진짜 속 쓰렸다. 밤새 대안 찾았다. 소재 전략 바꾸고, 타겟 조정하고, 입찰가 최적화하고. 그게 오늘 결과로 나왔다. 팀 회의에서오후 3시 주간 회의. 팀장이 말했다. "이번 주 베스트는 OO님 캠페인이죠. 공유 좀 해주세요." 내 차례 왔다. "저번주에 CPA가 계속 오르고 있어서요. 소재가 문제라고 판단했습니다. 기존에는 제품 나열형이었는데, 혜택 강조형으로 바꿨어요. 디자이너님이 밤늦게까지 도와주셔서 가능했습니다." 디자이너가 손 흔들었다. "아니에요~" "그리고 타겟도 좁혔습니다. 25-34세 여성, 관심사 뷰티+패션 조합으로. 예산은 같은데 효율이 3배 올랐어요." 팀장이 고개 끄덕였다. "좋습니다. 이 케이스 전사 공유하죠." 대표님이 말했다. "보너스 건 따로 얘기합시다." 이럴 때 에이전시 다니는 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디자이너한테 감사 인사 회의 끝나고 디자이너한테 갔다. "어제 급하게 부탁드려서 죄송했어요. 덕분에 대박 났습니다." "아 다행이다. 사실 어제 9시까지 다른 작업 있었는데 급하다길래..." "저녁 제가 살게요. 언제 편하세요?" "이번 주 금요일?" "오케이. 제가 예약할게요." 협업이 잘 되는 디자이너 한 명 있으면 AE 일이 반은 쉬워진다. 진짜다. 광고주 요구사항 이해하고, 빠르게 작업해주고, 피드백 받아서 수정도 잘 해주고. 에이전시에서 디자이너랑 사이 좋으면 살아남는다. 왜 이 순간이 중요한가 성과 좋을 때 슬랙에 공유하는 게 단순히 자랑이 아니다. 이게 에너지다. 팀 전체의. 우리 일은 숫자로 증명된다. ROAS, CPA, CTR, CVR. 이게 안 나오면 다 헛수고다. 광고주는 과정 안 본다. 결과만 본다. 그래서 좋은 성과 나오면 공유해야 한다. 팀원들한테 "우리 잘하고 있다"는 신호. 특히 야근 많이 하는 시즌에는 이런 게 버팀목이다. 지난달에 다른 AE가 캠페인 망쳤다. 광고주가 계약 해지했다. 그때 분위기 정말 안 좋았다. 다들 조용했다. 회의 때도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한 명이 좋은 성과 공유했다. 슬랙에 올렸다. 분위기가 조금씩 풀렸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느낌. 성과 공유는 팀 사기 관리다. 혼자 일하는 게 아니다 AE는 광고주 창구지만 실제로는 팀플레이다. 미디어플래너가 매체 최적화 해준다. 디자이너가 소재 만들어준다. 개발자가 전환 트래킹 심어준다. 팀장이 광고주 협상 도와준다. 내 이름으로 보고하지만 결과는 다 같이 만든 거다. 그래서 성과 나오면 공유하고 감사 표현해야 한다. "디자이너님 덕분에", "플래너님이 매체 잘 잡아주셔서" 이런 멘트. 이게 쌓이면 다음에 급할 때 도움 받기 쉽다. 협업은 관계다. 광고주 신뢰 쌓기 오늘 같은 성과가 나오면 광고주 신뢰가 확 올라간다. 지금까지는 "이 에이전시 괜찮나?" 싶었을 거다. 성과 안 나오고, 리포트만 길고, 변명 같은 해석만 많고. 근데 한 번 확실하게 터지면 달라진다. "역시 이 에이전시 실력 있네" 이렇게 된다. 그 다음부턴 일하기 편하다. 예산 더 달라고 하면 받아준다. 새 캠페인 제안하면 들어준다. 실수해도 이해해준다. 신뢰는 한 번에 안 쌓인다. 꾸준히 해야 한다. 그래도 오늘 같은 날은 한 계단 올라가는 느낌이다. 저녁 8시, 퇴근길 오늘은 일찍 나왔다. 8시. 지하철에서 슬랙 다시 봤다. 아침에 올린 글에 이모지 30개 달렸다. 댓글도 몇 개 더 있었다. "축하합니다!" "다음 주도 파이팅!" "저도 열심히 해야겠네요" 웃음 나왔다. 이래서 에이전시를 못 떠난다. 성과 나왔을 때 이 에너지. 팀원들이랑 나누는 이 순간. 물론 내일 모레면 또 CPA 올라갈 수도 있다. 광고주가 예산 줄이자고 할 수도 있다. 새 캠페인 기획하느라 야근할 수도 있다. 그래도 오늘 같은 날이 있으니까 버틴다. 집 가서 맥주 한 캔 마셔야겠다. 오늘은 내가 나한테 축하해줄 거다.오늘은 내 날이었다. 내일은 또 모르지만.

CPA가, ROAS가, 예산 소진율이 - 숫자로만 대화하는 에이전시 문화

CPA가, ROAS가, 예산 소진율이 - 숫자로만 대화하는 에이전시 문화

아침 인사도 숫자로 출근했다. 팀장이 물었다. "주말 잘 보냈어?" 내 대답. "네, ROAS처럼 효율적으로요." 웃긴 게 뭔지 아나. 팀장도 웃었다는 거다. 우리 팀 슬랙 채널 이름. '#cpa-싸움-본부'. 회의실 예약 메시지. "오후 2시, CTR 개선 회의, 30분 소진 예정." 점심 메뉴 투표. "치킨 CVR 80%, 돈까스 CPC 9000원." 이게 농담이 아니다. 진짜로 이렇게 말한다. 신입이 왔다. 첫날 환영 멘트. "우리 팀 이탈률 낮으니까 오래오래 있어." 신입 표정이 굳었다. 당연하지. 뭔 소린지 모를 거다. 디자이너가 물었다. "점심 뭐 먹을까?" AE 대답. "ROI 높은 걸로." 디자이너. "...그게 뭔데?" AE. "가성비요." 변역이 필요한 직장. 여기가 맞다.회의 시작 10초 만에 약자 5개 회의 시작했다. 팀장 첫 마디. "이번 캠페인 CPA 1만 2천, 목표 대비 120%. CVR은 2.3%로 전월 대비 -0.5%p. CTR은 양호한데 ROAS가 380이라 광고주가 불만. CPM은 낮췄는데 CPC가 올랐어. 왜 그럴까?" 10초. 약자 7개. 신입이 노트북 켰다. 열심히 검색한다. 'CPA 뭔지' 'CVR 의미'. 나도 1년차 때 그랬다. 지금은 그냥 머리에 박혀 있다. 미디어플래너가 말했다. "CPV 기준으로 보면 VTR이 낮아서요. 그래서 eCPM이 높아지고, 결국 ROAS 하락." 과장이 끄덕였다. "그럼 타게팅 CPC 모델로 바꿔볼까? CPL 개선될 수도." 나는 받아적었다. 약자만 8개 더 나왔다. 회의록 쓰는데 한글이 10%도 안 된다. 나머지는 다 영어 대문자. 외부 사람이 우리 회의 들으면 뭐라고 할까. "여기 외국인 회사예요?" 아니면 "암호 쓰세요?" 둘 다 맞다. 우리끼리만 통하는 암호. 그게 마케팅 용어다.광고주 전화에도 숫자부터 광고주한테 전화 왔다. 오전 11시. "대리님, 어제 광고 어땠어요?" 내 대답. 자동이다. "CPA 11000원, 목표 대비 110%입니다. 전환수 52건, CPM 5800원으로 안정적이고요. CTR 1.2%는 업계 평균 상회입니다." 광고주. "...그러니까 잘 된 거예요?" 나. "네, ROAS 420이면 양호합니다." 광고주. "아 네..." 끊고 나서 생각했다. 방금 한국어 했나? 숫자만 10개 말했다. 그게 설명이라고 생각했다. 광고주는 이해 못 했을 수도 있다. 다시 전화했다. "죄송한데요, 쉽게 말하면 100만원 쓰셔서 420만원 매출 나왔습니다." 광고주. "아! 그럼 그렇게 말씀하시죠!" 맞다. 나 지금 로봇처럼 말하고 있었다. 점심 먹으러 갔다. 후배가 물었다. "언니, 메뉴 뭐 추천해요?" 나. "CVR 높은 거." 후배. "...?" 나. "아 미안. 맛있는 거." 입에서 자동으로 나온다. 일상 대화에도 마케팅 용어가 튀어나온다. 남자친구한테 카톡 보냈다. "오늘 야근. 퇴근 시간 TBD." 남친. "TBD가 뭐야?" 나. "To Be Determined. 미정." 남친. "...그냥 미정이라고 하지." 맞는 말이다. 근데 습관이다. 이미.저녁 먹으면서도 광고 얘기 저녁 7시. 팀 회식. 메뉴 정했다. 삼겹살. 고기 구우면서 하는 얘기. "이번 캠페인 CPA 진짜 낮췄다." "CTR이 생각보다 높더라." "근데 ROAS는 왜 안 오르지?" "타게팅 문제 아닐까. CPC가 너무 높아." 고기 먹으면서 하는 얘기가 이거다. 연애 얘기? 없다. 주말 계획? 없다. 취미? 그게 뭐더라. 신입이 물었다. "선배님들, 일 얘기 아닌 거 안 해요?" 다들 멈췄다. 고기 굽는 소리만 들렸다. 과장이 웃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얘기가 이거밖에 없어." 맞다. 슬프지만 맞다. 일 얘기 아닌 거 하려고 했다. 영화 얘기. "기생충 봤어?" 대리. "응, CGV 전환율 높더라." 나. "...그게 아니라 영화 내용." 대리. "아 맞다. 재밌었어." 3초 만에 다시 일 얘기로 돌아왔다. "그나저나 다음 주 캠페인 예산 배분 어떻게 하지?" "페이스북 CPM 올랐던데." "구글 CPC도 만만찮아." 고기 다 먹을 때까지. 마케팅 용어만 오갔다. 집 가는 지하철. 옆자리 사람들 대화가 신기했다. "주말에 등산 가자." "요즘 드라마 뭐 봐?"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됐을까. 숫자로만 대화하게. 주말에도 대시보드 확인 토요일 오전 11시. 침대에 누워 있다. 자동으로 손이 간다. 핸드폰. 광고 대시보드 앱 열었다. 어제 CPA. 확인. 오늘 0시~현재 소진율. 확인. CTR 변동. 확인. 남자친구가 물었다. "주말인데도 봐?" 나. "습관이야." 남친. "ROAS 확인하는 거지?" 나. "...어떻게 알았어?" 남친. "나도 에이전시니까." 우리 커플 대화. 이거다. "오늘 CPA 어때?" "괜찮아. 너는?" "나도. CTR 올랐어." "좋네." 이게 주말 아침 대화다. 로맨틱하지 않다. 근데 이게 편하다. 친구 만났다. 대학 동기. 일반 회사 다닌다. 친구가 물었다. "요즘 어때?" 나. "바빠. ROAS 맞추느라." 친구. "...뭐?" 나. "아 미안. 광고 성과." 친구. "너 말하는 거 하나도 모르겠어." 설명했다. 5분 동안. CPA가 뭔지. ROAS가 뭔지. CTR이 뭔지. 친구. "그래서 그게 다 뭐 하는 거야?" 나. "...광고." 친구. "광고면 광고지, 왜 이렇게 복잡해?" 대답 못 했다. 맞는 말이니까. 우리는 왜 이렇게 복잡하게 말할까. 간단하게 말하면 안 되나. 근데 이미 익숙해졌다. 이 언어에. 이 숫자에. 마케팅 용어 없이는 설명 불가 월요일 아침. 신규 광고주 미팅. 대표님이 물었다. "우리 광고 어떻게 할 건가요?" 기획서 펼쳤다. 준비 많이 했다. "타게팅 기반 퍼포먼스 마케팅으로 CPA 최적화하고, ROAS 목표 350 이상 달성하겠습니다. CTR 1% 이상 유지하면서 CPM 효율 개선하고, CVR은 2.5% 목표로..." 대표님 표정이 굳었다. 옆에 마케팅팀장도 멍했다. 대표님. "...다시 한 번 천천히 설명해주시겠어요?" 식은땀 났다. 방금 뭐라고 했지? 다시 했다. 이번엔 쉽게. "100만원 광고비 쓰시면 350만원 매출 만들어드리겠습니다." 대표님. "아! 그거네요. 그럼 그렇게 말씀하시죠." 미팅 끝나고 돌아왔다. 팀장이 물었다. "어땠어?" 나. "제가... 너무 어렵게 설명한 것 같아요." 팀장. "그럴 수 있지. 우리끼리만 쓰는 언어니까." 맞다. 우리끼리만 통하는 언어. 에이전시 5년. 이 언어가 모국어처럼 됐다. 한국어보다 편하다. 숫자가 단어보다 빠르다. 근데 가끔 생각한다. 이게 맞나? 광고주는 이해 못 한다. 일반 사람들은 뭔 소린지 모른다. 내 설명을 듣고 고개 끄덕이는 사람. 같은 에이전시 사람뿐이다. 우리는 섬에 산다. 마케팅 용어라는 섬. 그 안에서만 통한다. 숫자 없으면 불안한 사람들 점심시간. 식당 줄 서 있다. 앞에 두 명. 우리 회사 사람 같다. 들렸다. "어제 CPM 얼마 나왔어?" "5200원. 너는?" "나는 6800원. 좀 높아." "타게팅 때문 아닐까?" 줄 서서도 숫자 얘기. 내 차례 왔다. 주문했다. "제육볶음 하나요." 직원. "매운 거요, 안 매운 거요?" 나. 자동으로. "CTR 높은 걸로요." 직원. "...네?" 나. "아 죄송해요. 매운 걸로요." 미쳤나. 식당에서도 마케팅 용어가. 밥 먹으면서 생각했다. 나 진짜 이상해진 건가. 핸드폰 꺼냈다. 대시보드 확인. 점심시간에도. CPA 확인. ROAS 확인. 예산 소진율 확인. 숫자 보면 안심된다. 숫자 없으면 불안하다. 이게 직업병인가. 옆 테이블 사람들. 웃으면서 얘기한다. "주말에 제주도 갔다 왔어." "날씨 좋았어?" 우리는? "주말에도 대시보드 봤어." "CPA 떨어졌더라." 이게 우리 일상이다. 숫자가 일상. 약자가 언어. 슬픈가. 근데 어쩌겠어. 이미 이렇게 됐는걸. 이게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저녁 8시. 퇴근 준비. 신입이 물었다. "선배님, 저 이상한가요?" 나. "왜?" 신입. "친구들이 제가 하는 말 이해 못 한대요. 제가 이상하게 말하는 것 같대요." 웃었다. 나도 그랬으니까. "정상이야. 우리가 특수하게 말하는 거지." 신입. "근데 선배님은 언제부터 이렇게 말했어요?" 나. "2년차부터. 어느 순간 자동으로." 생각해보니 맞다. 2년차 어느 날부터. 숫자가 먼저 나왔다. 한국어보다. "CPA 얼마야?" 가 "상황 어때?"보다 빨랐다. "ROAS 확인했어?" 가 "잘 되고 있어?"보다 정확했다. 신입. "저도 그렇게 될까요?" 나. "응. 1년만 있으면." 단언했다. 확신했다. 이게 이 업계 언어니까. 퇴근했다. 지하철 탔다. 옆에 두 사람 대화. "오늘 회의 어땠어?" "괜찮았어."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괜찮았다가 뭐야. 구체적으로.' 중독됐다. 숫자에. 구체적인 것에. 애매한 표현을 못 견딘다. "괜찮았어"보다 "목표 달성률 90%"가 낫다. "잘 됐어"보다 "전월 대비 120%"가 정확하다. 이게 에이전시가 만든 나다. 숫자로 생각하는 사람. 집 도착했다. 문 열었다. 자동으로 생각했다. '오늘 업무 달성률 85%. 내일 목표 3건. 예상 소요 시간 6시간.' 일상도 KPI로 생각한다. 무서운 거다. 근데 편하다. 결국 우리만의 언어 금요일 저녁. 회식 2차. 다들 취했다. 그래도 하는 얘기. "이번 분기 CPA 평균 얼마 나왔어?" "ROAS는 목표 달성했어?" "다음 분기 예산 얼마야?" 술 먹어도 숫자. 취해도 마케팅 용어. 과장이 말했다. "우리 진짜 병신들이다." 다들 웃었다. 맞는 말이니까. "일반 사람들은 우리 말 이해 못 해." "우리끼리만 통해." "근데 이게 편해." 맞다. 이게 편하다. 우리만의 언어. 우리만의 세계. 외부 사람한테 설명하기 귀찮다. CPA가 뭔지. ROAS가 뭔지. 같은 업계 사람 만나면 편하다. "ROAS 어때?" 하면 끝이다. 신입이 물었다. "저는 언제쯤 선배님들처럼 될까요?" 팀장. "곧 돼. 어쩔 수 없어." 안타깝지만 맞다. 여기 있으면 자동으로 된다. 숫자로 말하고. 약자로 생각하고. 대시보드를 일상처럼 확인하는 사람. 이게 에이전시 문화다. 이게 우리 언어다. 좋은 건가. 나쁜 건가. 모르겠다. 근데 확실한 건. 이미 이렇게 됐다. 돌이킬 수 없다. 나는 이제 CPA, ROAS, CTR 없이 설명 못 한다. 숫자 없으면 불안하다. 구체적이지 않으면 답답하다. 이게 5년차 에이전시 AE의 현실이다.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근데 뭐 어쩌겠어. 월요일 되면 또 출근한다. 그리고 또 물어본다. "오늘 CPA 어때?"결국 마케팅 용어는 우리의 제2언어가 됐다. 아니, 제1언어인지도.

경쟁사 광고를 봤다, 캡처한다, 보낸다 - AE의 주말

경쟁사 광고를 봤다, 캡처한다, 보낸다 - AE의 주말

경쟁사 광고를 봤다, 캡처한다, 보낸다 - AE의 주말 토요일 오전 11시, 카페 친구가 늦는다고 문자 왔다. 혼자 앉아서 아이스아메리카노 마신다. 인스타그램 켠다. 피드 스크롤하다가 멈췄다. 광고주 경쟁사 광고다. 자동으로 캡처했다."신제품 프로모션인가." 소재 확대해서 본다. 배너 카피 메모한다. "첫 구매 20% 할인". 우리는 15%였다. 댓글 확인한다. 반응 괜찮다. '좋아요' 3800개. 댓글 120개. 우리 캠페인은 2200개였다. 노트 앱 켠다.경쟁사 A / 인스타 피드 광고 소재: 제품 단독컷 + 할인율 강조 카피: 직관적, 혜택 중심 반응: 우리보다 약 1.7배저장했다. 친구 왔다. "뭐해?" "아무것도." 폰 뒤집어 놓는다. 그런데 머릿속은 그 광고다. 할인율을 올려야 하나. 소재를 저렇게 심플하게 가야 하나. 친구 말이 안 들린다. "야, 너 듣고 있어?" "응, 듣고 있어." 거짓말이다. 영화관 대기줄, 오후 3시 팝콘 사려고 줄 선다. 앞에 10명 정도다. 또 폰 꺼낸다. 유튜브 앱 켠다. 쇼츠 들어간다. 세 번째 영상에 광고 나온다.또 경쟁사다. 이번엔 다른 광고주 꺼다. 6초짜리 범퍼 광고. 캡처할 수 없다. 화면 녹화 시작한다. 광고 끝났다. 다시 돌린다. 프레임 하나하나 본다.첫 2초: 후킹 카피 중간 2초: 제품 시연 마지막 2초: CTA우리 영상은 8초인데. 6초로 줄여도 되는 거 아닌가. 광고비 30% 아낄 수 있다. 슬랙 켠다. 미디어플래너한테 보낸다. "이거 보세요. 경쟁사 범퍼 광고 효율 좋을 것 같은데." 토요일인데 보냈다. 답 안 온다. 당연하다. 주말이니까. 나도 일하는 건 아니다. 그냥 본 거다. 거짓말이다. 이게 일이다. 팝콘 받았다. 영화관 들어간다. 본편 시작 전 광고 또 나온다. 또 본다. 습관이다. 저녁 약속, 7시 남자친구 만났다. 홍대 맛집이래서 왔다. 웨이팅 30분이다. 대기 중에 또 폰 본다. 페이스북 켠다. 피드 광고 3개 지나간다. 하나 캡처했다. 광고주는 아니고 같은 카테고리다. 소재가 신선하다. "또 일해?" 남자친구가 말한다. "아니, 그냥 봤어." "주말인데." "응, 알아." 알지만 못 멈춘다. 경쟁사 광고가 눈에 들어오면 자동이다. 캡처 - 분석 - 메모 - 공유. 습관화됐다. 직업병이다."너 진짜 쉬는 날이 없네." 남자친구 말이 맞다. 쉬는 날이 없다. 마음이 안 쉰다. 몸은 카페에 있어도 머리는 캠페인이다. 영화 보는데 광고 분석한다. "미안, 안 볼게." 폰 가방에 넣는다. 5분 버텼다. 진동 왔다. 광고주다. "다음 주 예산 추가 가능할까요?" 주말인데 연락 온다. 대리가 받아야 한다. 답장 쓴다. "검토해보고 월요일에 말씀드릴게요." 보냈다. 남자친구가 한숨 쉰다. "야, 너 번아웃 온다." "아직 괜찮아." 거짓말이다. 벌써 왔다. 집 침대, 밤 11시 하루 끝났다. 침대에 누웠다. 피곤한데 잠이 안 온다. 폰 켠다. 캡처 폴더 연다. 오늘 저장한 광고 7개다. 하나씩 다시 본다.인스타 피드 광고 3개 유튜브 범퍼 광고 1개 페이스북 동영상 광고 2개 네이버 DA 배너 1개정리한다. 노션에 표 만든다. 광고주별, 매체별, 소재 유형별. 월요일에 팀 회의 때 공유할 거다. "주말에 경쟁사 모니터링 좀 했는데요." 이렇게 말할 거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다. KPI에도 없다. 그냥 한다. 왜 하는지 모르겠다. 안 하면 불안하다. 경쟁사가 뭐 하는지 모르는 게 싫다. 우리 광고주가 지는 게 싫다. ROAS 지는 게 싫다. 다음 미팅에서 "경쟁사는 이렇게 하던데요" 듣는 게 싫다. 그래서 먼저 본다. 먼저 캡처한다. 먼저 분석한다. 에이전시 AE가 이렇다. 쉬어도 안 쉰다. 머리가 항상 켜져 있다. 폰 끈다. 잠들려고 한다. 근데 생각난다. 내일 일요일인데 카페 갈까. 노트북 가져가서 리포트 좀 만들까. 월요일 아침이 편할 거다. 거짓말이다. 월요일은 또 바쁘다. 일요일 오후, 카페 또 왔다 결국 나왔다. 노트북 켰다. 리포트 연다. 주간 성과 정리한다.광고주 A: CPA 15% 개선 광고주 B: ROAS 120% 유지 광고주 C: 예산 소진율 95%숫자 보면 마음이 편하다. 잘하고 있다는 증거니까. 그런데 또 불안하다. 다음 주는 어떻게 될까. 경쟁사는 뭐 준비하고 있을까. 인스타 켠다. 또 광고 본다. 또 캡처한다. 친구한테 문자 왔다. "너 오늘 뭐 해?" "카페에서 쉬어." 거짓말이다. 일한다. "주말인데 집에서 쉬지." "응, 나중에 들어갈게." 안 들어간다. 해질 때까지 있을 거다. AE가 이렇다. 주말도 일한다. 근무시간이 따로 없다. 경쟁사 광고가 올라오는 시간이 근무시간이다. 24시간이다. 365일이다. 이게 맞나 싶다 가끔 생각한다. 이게 맞는 삶인가. 주말에 카페 와서 광고 캡처하고. 영화 보다가 경쟁사 분석하고. 친구 만나도 폰 보고. 번아웃 온 것 같다. 아니, 벌써 왔다. 그런데 못 멈춘다. 이게 습관이 됐다. 이게 정체성이 됐다. "나는 에이전시 AE다." "경쟁사 모니터링은 기본이다." "쉬는 날에도 일한다." 자랑은 아니다. 자랑할 것도 아니다. 그냥 현실이다. 에이전시가 이렇다. 동기들도 다 그렇다. 주말에 슬랙 켠다. 새벽에 대시보드 본다. "우리 미쳤나?" 단톡방에 물었다. "ㅇㅇ 미쳤음" "근데 안 하면 불안함" "월요일에 광고주가 물어보면?" 다들 안다. 이게 이상한 거. 그런데 못 고친다. 이게 에이전시 생존법이니까. 5년 차가 이렇다. 10년 차는 어떨까. 상상이 안 된다. 이직해야 하나. 인하우스 가야 하나. 거기는 주말에 쉴 수 있을까. 모르겠다. 일단 오늘은 캡처한다. 경쟁사 광고 또 올라왔다. 또 본다. 또 저장한다.일요일 저녁 7시. 카페 나왔다. 캡처 폴더에 광고 12개 더 들어갔다. 월요일이 기다려진다. 거짓말이다. 월요일이 무섭다.

디자이너와 미디어플래너, 일정 조율의 악몽

디자이너와 미디어플래너, 일정 조율의 악몽

오전 10시, 슬랙 폭탄 출근하자마자 슬랙 DM 7개. 광고주 김팀장: "소재 금요일까지 가능할까요?" 디자이너 수진님: "이번 주는 불가능해요." 미디어플래너 준호님: "세팅은 언제 들어오나요?" 화요일 아침이다. 금요일까지 3일. 커피 마시기 전에 이미 머리 아프다.광고주는 "빨리"를 입에 달고 산다. 디자이너는 "시간이 필요해요"가 주특기다. 미디어플래너는 "소재 먼저 주세요"만 반복한다. 나는 그 사이에서 줄다리기한다. AE의 일상이다. 디자이너의 시간표 수진님 책상으로 갔다. "수진님, 금요일까지 가능할까요?" "지금 손에 있는 게 4건이에요." "..." "월요일 오전이면 드릴게요." 월요일 오전. 광고주는 금요일이래. "금요일 오후 6시는요?" "5시까지는 드릴게요." 협상 타결.디자이너한테 무리한 일정 부탁하는 거 미안하다. 진짜로. 수진님은 밤 11시까지 남아서 작업한다. 나도 안다. 근데 광고주는 모른다. "AE님이 일정 관리를 해주셔야죠." 내가 뭘 어떻게 관리해. 시간을 만들어낼 순 없다. 미디어플래너의 논리 준호님한테 갔다. "금요일 5시에 소재 들어가면, 세팅 언제 가능하세요?" "월요일 라이브 목표시면, 금요일엔 받아야 해요." "5시요." "...주말에 검수해야겠네요." 또 미안하다.미디어플래너는 세팅 시간이 필요하다. 소재 들어오면 사이즈별로 올리고, 타겟 설정하고, 예산 배분하고. 최소 반나절. 금요일 5시 소재 받으면 월요일 오전 라이브는 빡빡하다. "주말에 제가 할게요." 준호님이 말했다. 고맙다. 진짜 고맙다. 근데 이게 매번이다. 광고주는 모른다 광고주 김팀장한테 전화했다. "금요일 오후 5시에 소재 드리고, 월요일 오전 라이브 목표로 갈게요." "금요일 오전은 안 되나요?" "디자이너 일정상 5시가 최선입니다." "그럼 일요일 밤에 라이브 안 되나요? 월요일 오전은 늦어요." 일요일 밤. 디자이너는 금요일까지 작업. 미디어플래너는 주말 세팅. 나는 일요일 밤 검수. "검토해볼게요." 끊었다. 광고주는 광고가 뚝딱 나온다고 생각한다. 소재 기획 2일. 디자인 3일. 피드백 수정 1일. 세팅 반나절. 검수 2시간. 최소 일주일. 근데 광고주는 "이번 주 안으로"를 달고 산다. 내부 회의, 다시 수진님, 준호님 불러서 회의했다. "일요일 밤 라이브 가능할까요?" "..." "..." 둘 다 말이 없다. "제가 일요일에 사무실 나올게요. 검수는 제가 하고, 준호님은 세팅만 부탁드려요." 준호님이 고개 끄덕였다. "수진님, 금요일 5시 꼭 부탁드려요." "최선을 다할게요." 최선을 다한다는 건, 금요일 밤샐 수도 있다는 뜻이다. 회의 끝나고 자리 돌아왔다. 슬랙에 수진님 메시지. "고생 많으시네요. 화이팅이에요." 울 것 같다. 금요일 오후 5시 30분 수진님이 소재 슬랙에 올렸다. 30분 늦었다. 근데 괜찮다. 파일 다운받아서 확인했다. 배너 6종. 영상 3종. 퀄리티 좋다. 역시 수진님. 광고주한테 전송했다. "소재 전달드립니다. 확인 부탁드려요." 30분 뒤 답장. "CTA 버튼 색상 변경 가능할까요?" ... "네, 확인하겠습니다." 수진님한테 DM 보냈다. "퇴근하셨나요...?" "아직이요. 뭐 필요하세요?" CTA 버튼 색상 수정 요청 전달했다. "20분 드릴게요." 금요일 저녁 6시. 수진님은 원래 6시 퇴근이다. 일요일 오후 2시, 사무실 사무실 나왔다. 아무도 없다. 컴퓨터 켰다. 소재 최종본 확인했다. 준호님한테 전달했다. "세팅 시작할게요." 나는 커피 내려 마시면서 대시보드 켰다. 경쟁사 광고 돌아가는 거 체크했다. 오후 4시쯤 준호님 도착했다. "시작할게요." "고생하십니다." 준호님은 이어폰 끼고 세팅 들어갔다. 나는 리포트 작업했다. 일요일 오후. 둘이서 사무실. 에이전시 일상이다. 일요일 밤 10시, 라이브 "라이브 완료했습니다." 준호님 메시지. 대시보드 확인했다. 광고 정상 노출. 예산 소진 시작. "고생하셨어요. 내일 아침 출근 늦게 하세요." "괜찮아요. 정상 출근할게요." 광고주한테 메시지 보냈다. "라이브 완료되었습니다." 답장은 다음날 오전에 왔다. "고생하셨어요." 고생은 우리가 했다. 월요일 오전, 출근 수진님이랑 준호님 출근했다. "주말 고생하셨어요." 준호님이 웃으면서 말했다. "다음 캠페인 일정은 언제예요?" 아. 다음 캠페인. 광고주 이팀장이 어제 메시지 보냈다. "신규 캠페인 이번 주 금요일 라이브 가능할까요?" 오늘이 월요일. 금요일까지 4일. "회의 잡을게요." 슬랙 열었다. 또 시작이다. AE의 숙명 일정 조율이 AE 업무의 60%다. 광고주 설득 20%. 내부 팀 조율 40%. 나머지 40%가 실제 기획이고 전략이다. 근데 광고주는 일정 조율을 '일'로 안 친다. "당연히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당연하다. 근데 쉽지 않다. 디자이너는 창작 시간이 필요하다. 미디어플래너는 세팅 시간이 필요하다. 광고주는 빠른 결과가 필요하다. 다 맞는 말이다. 근데 시간은 하나다. 그 시간을 쪼개서 맞추는 게 AE 일이다. 이번 주도 화요일 오전. 광고주 3개. 진행 캠페인 5개. 신규 캠페인 2개. 디자이너 2명. 미디어플래너 2명. 일정표 펼쳤다. 빨간색 동그라미가 12개. 데드라인이다. 슬랙 열었다. "이번 주 일정 공유드립니다." 메시지 보냈다. 답장 기다린다. 또 조율이 시작된다.금요일까지 4일. 소재 3일. 세팅 하루. 시간은 모자란다. 매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