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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차 AE,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5년차 AE,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5년차 AE,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5년이면 충분하다는데 출근했다. 또 대시보드를 켰다. CPA 11,500원. ROAS 430%. 예산 소진율 87%. 숫자는 괜찮다. 근데 뭔가 공허하다. 동기 민지가 슬랙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나 이직 준비 중이야." 세 번째다. 올해만. 에이전시 5년차가 되면 다들 이렇게 된다. 점심 먹으면서 물었다. "어디로 가려고?" 민지가 말했다. "브랜드사 인하우스. 더 이상 못 버티겠어." 나도 안다. 에이전시 5년이면 한계다. 체력이 먼저 간다. 야근은 일상이고, 광고주 눈치는 매일이다. 문제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거다.선택지는 세 개 에이전시 AE가 5년차쯤 되면 갈림길이 보인다. 첫 번째, 클라이언트사 인하우스 마케터. 두 번째, 더 큰 에이전시. 세 번째, 스타트업 마케터. 각각 장단점이 있다. 명확하다. 클라이언트사는 안정적이다. 야근이 덜하다. 한 브랜드만 파면 된다. 연봉도 올라간다. 내가 담당하는 광고주 마케팅팀장 연봉이 7천만원이라고 들었다. 큰 에이전시는 커리어가 확실하다. 대행사 이름값이 있다. 글로벌 캠페인 경험할 수 있다. 연봉은 비슷한데 이력서에 쓸 만하다. 스타트업은 자유롭다. 빠르게 의사결정 된다. 주식도 준다. 물론 언제 가치가 생길지 모르지만. 문제는 각각 다 포기해야 할 게 있다는 거다. 클라이언트사를 생각하면 광고주 마케팅팀에서 연락이 왔다. 신규 캠페인 브리핑이다. 회의하면서 생각했다. 저쪽 입장이 되면 어떨까. 장점은 명확하다. 더 이상 광고주 눈치 안 봐도 된다. 내가 광고주니까. 에이전시한테 요구하는 입장이 된다. 야근도 줄어든다. 캠페인 라이브 날에도 에이전시가 모니터링 한다. 나는 리포트만 받으면 된다. 한 브랜드만 깊게 판다. 브랜드 전략부터 세울 수 있다. 단순히 퍼포먼스만이 아니라. 연봉도 오른다. 5년차 에이전시 AE는 5천만원 정도다. 클라이언트사 마케터는 6천에서 시작한다. 근데 단점도 있다. 회사 정치가 복잡하다. 에이전시는 실적이 전부다. 숫자가 말해준다. 근데 대기업은 다르다. 윗사람 눈에 들어야 한다. 의사결정이 느리다. 에이전시는 빠르다. 광고주 오케이만 나오면 바로 집행한다. 근데 인하우스는 결재 라인이 길다. 업무 범위가 좁아진다. 한 브랜드만 본다. 다양한 산업 경험은 못 한다. 커리어가 그 회사에 갇힌다. 제일 무서운 건 에이전시 출신을 무시하는 문화다. "대행사 출신은 전략이 약해" 이런 소리. 실제로 듣는다.더 큰 에이전시를 보면 동기 재훈이는 작년에 이직했다. 직원 60명 에이전시에서 300명 에이전시로. "어때?" 물었다. 재훈이 말했다. "프로젝트는 확실히 크긴 해." 큰 에이전시는 이름값이 있다. 이력서에 쓰면 좋다. 채용공고에 "대형 대행사 경력자 우대" 이런 거 자주 본다. 다루는 예산 규모가 크다. 우리 에이전시는 월 3천만원 광고주가 큰 거다. 큰 에이전시는 월 3억이 기본이다. 글로벌 캠페인도 할 수 있다. 해외 지사랑 협업한다. 커리어에 확실히 도움 된다. 시스템이 체계적이다. 교육도 있고, 승진 기준도 명확하다. 근데 재훈이가 말했다. "대신 내가 하는 일은 더 작아졌어." 큰 에이전시는 분업이 철저하다. AE는 정말 클라이언트 응대만 한다. 기획은 플래너, 미디어는 미디어팀, 크리에이티브는 디자인팀. 작은 에이전시는 다 해본다. AE가 기획도 하고, 미디어도 보고, 크리에이티브도 피드백 준다. 큰 에이전시는 그게 없다. 전문성은 높아지는데, 범위는 좁아진다. 그리고 정치가 있다. 작은 에이전시는 실적이면 된다. 큰 에이전시는 팀장 눈치, 본부장 눈치 다 봐야 한다. 연봉도 생각보다 안 오른다. 이름값만 바뀌고 돈은 비슷하다. 스타트업은 어떨까 지난달에 스타트업 마케터 JD를 봤다. 연봉 6천, 스톡옵션 0.1%. 솔직히 끌렸다. 스타트업은 빠르다. 회의에서 결정하면 다음 날 바로 집행한다. 에이전시보다 빠르다. 자율성이 있다. 내가 전략 짜고, 내가 집행하고, 내가 성과 본다. 누구 눈치 안 봐도 된다. 성장 가능성이 있다. 스톡옵션이 실제로 가치 생기면 목돈 된다. 물론 확률은 낮지만. 배우는 게 많다. 퍼포먼스만이 아니라 브랜딩도 하고, PR도 하고, 심지어 CS도 본다. 근데 리스크가 크다. 스타트업 망하면 경력 공백 생긴다. 1년 다니다가 회사 문 닫으면 다시 이직 준비해야 한다. 야근은 더 심할 수 있다. 에이전시는 그래도 광고주 퇴근하면 우리도 퇴근한다. 스타트업은 24시간이 캠페인이다. 시스템이 없다. 교육도 없고, 매뉴얼도 없다. 다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연봉은 높은데 복지는 없다. 에이전시는 그래도 4대보험, 퇴직금 확실하다. 스타트업은 기본급 낮고 인센티브로 채운다. 제일 무서운 건 스톡옵션이 휴지조각 될 확률이다. 0.1%가 10억이 될 수도 있고, 0원이 될 수도 있다.나는 뭘 원하는 걸까 퇴근하고 남자친구를 만났다. 준혁이도 에이전시 5년차다. "너는 어떻게 할 거야?" 물었다. 준혁이가 말했다. "아직 모르겠어. 근데 확실한 건 뭔가 바꿔야 한다는 거." 맞다. 이대로는 못 버틴다. 문제는 내가 뭘 원하는지 모르겠다는 거다. 돈을 원하는 건가. 그럼 클라이언트사나 스타트업이다. 커리어를 원하는 건가. 그럼 큰 에이전시다. 워라밸을 원하는 건가. 그럼 클라이언트사다. 자유를 원하는 건가. 그럼 스타트업이다. 근데 다 원한다. 돈도, 커리어도, 워라밸도, 자유도. 그런 건 없다는 걸 안다. 결국 포기의 문제 집에 와서 노트북을 켰다. 링크드인을 봤다. 동기들이 이직 소식을 올렸다. 민지는 대기업 인하우스, 재훈이는 큰 에이전시, 수진이는 스타트업. 다들 자기 선택에 만족한다고 썼다. 근데 술 마시면 다들 불평한다. 민지는 회사 정치가 싫고, 재훈이는 일이 재미없고, 수진이는 야근이 심하다고. 결국 완벽한 선택은 없다. 클라이언트사 가면 정치와 느린 의사결정 감수해야 한다. 큰 에이전시 가면 좁아진 업무 범위 감수해야 한다. 스타트업 가면 불안정성 감수해야 한다. 뭘 포기할 수 있는지가 기준이다. 나는 뭘 포기할 수 있을까. 광고주 눈치는 이제 지겹다. 야근도 지겹다. 근데 다양한 프로젝트는 좋다. 빠르게 실행하는 것도 좋다. 아직 모르겠다. 일단 준비는 해야 한다 오늘 이력서를 다시 썼다. 5년 동안 뭘 했는지 정리했다. 담당 광고주 3개, 총 집행 광고비 12억, 평균 ROAS 380%. 포트폴리오도 만들었다. 잘 나간 캠페인 5개. 성과 수치 다 넣었다. 링크드인 프로필도 업데이트했다. 헤드헌터 연락 오라고. 일단 옵션을 만들어야 한다. 선택지가 있어야 고를 수 있다. 지금 회사가 나쁜 건 아니다. 동료들도 좋고, 광고주도 괜찮다. 근데 5년이면 충분하다. 더 있으면 안 된다. 에이전시 7년차, 8년차는 이직이 더 어렵다. "왜 이제까지 에이전시만 있었어요?" 이런 질문 받는다. 지금이 타이밍이다. 어디로 갈지는 아직 모른다. 근데 움직이긴 해야 한다. 내일 헤드헌터한테 연락할 거다. 어떤 기회가 있는지 물어볼 거다. 다음 주에는 동기 민지 만나서 클라이언트사 얘기 들을 거다. 준혁이도 만나서 같이 고민할 거다. 한 달 안에 방향은 정할 거다. 5년차 AE.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정답은 모른다. 근데 여기 계속 있는 건 답이 아니다.5년이면 충분하다. 이제 다음으로 가야 한다. 어디로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