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주 담당자가 바뀌었다, 다시 시작이다

광고주 담당자가 바뀌었다, 다시 시작이다

또 바뀌었다

화요일 아침 9시 반. 슬랙 알림. “안녕하세요, 이번에 OO팀 담당하게 된 김민수입니다.”

커피 한 모금 넘기다가 목이 막혔다. 세 번째다. 올해만.

B사 담당자가 또 바뀐 거다. 전임자랑 6개월 일했다. 이제 좀 편해졌는데. CPA 목표도 합의했고, 리포트 양식도 맞췄고. 농담도 주고받는 사이였다.

이제 다시 처음부터다.

전화 왔다. 신임 담당자. “이번 주 중으로 미팅 가능하신가요?” 가능하죠. 당연히 가능하죠.

끊고 나서 한숨 나왔다. 온보딩 자료 다시 만들어야 한다.

신뢰는 0부터

목요일 오후 3시. 광고주 사무실. 신임 담당자 앞에 앉았다.

“현재 진행 중인 캠페인 설명 부탁드립니다.”

준비해 간 자료 펼쳤다.

  • 지난 6개월 성과 트렌드
  • 월별 예산 소진율
  • 채널별 ROAS
  • 개선 히스토리

30분 설명했다. “아, 네. 검토해볼게요.”

표정이 안 읽힌다. 믿는 건지 의심하는 건지.

당연하다. 처음 보는 사람이니까. 전임자한테는 안 보내도 되던 데일리 리포트. 이 사람한테는 다 보내야 한다.

“경쟁사는 어떻게 하고 있나요?” “예산 증액하면 ROAS 유지 가능한가요?” “왜 CPC가 오른 건가요?”

대답했다. 하나하나. 설명했다. 자세하게.

미팅 끝나고 나왔다. 2시간 걸렸다.

사무실 돌아와서 동기한테 말했다. “담당자 또 바뀌었어.” “헐. 몇 번째야?” “올해만 세 번째.”

동기가 웃었다. “에이전시 숙명이지 뭐.”

매번 증명해야 한다

신임 담당자는 뭘 봤을까.

  • 전임자가 합의한 KPI? 모른다.
  • 6개월간 쌓은 성과? 의심스럽다.
  • 우리 에이전시 역량? 확인 필요하다.

당연하다. 그 사람 입장에서는 우리가 낯선 외주업체다.

전임자는 알았다.

  • 우리가 밤새워서 캠페인 모니터링한다는 것
  • 소재 A/B테스트 20번 돌린다는 것
  • 예산 효율 0.1%까지 신경 쓴다는 것

신임 담당자는 모른다. 증명해야 한다. 다시.

금요일. 데일리 리포트 보냈다. 토요일. 주말인데 캠페인 성과 급등. 캡처해서 카톡 보냈다. “주말 트래픽 좋습니다. 예산 증액 고려하시겠어요?”

답 없다. 월요일 오전에 답 왔다. “네, 검토하겠습니다.”

검토. 그 단어가 제일 싫다. 전임자는 바로 결정했는데.

화요일. 경쟁사 광고 보고서 보냈다. 수요일. 업계 트렌드 아티클 공유했다. 목요일. 우리 캠페인 개선안 3개 제안했다.

답은 짧다. “감사합니다.” “확인했습니다.”

신뢰는 시간이 필요하다. 알지만 답답하다.

그래도 방법은 있다

세 번 겪으니까 패턴이 보인다. 신임 담당자 온보딩에 필요한 것들.

첫 미팅 때 챙길 것

  • 과거 성과 아닌 현재 계획
  • 문제점 아닌 해결책
  • 숫자 나열 아닌 인사이트

“ROAS 150% 달성했습니다” 보다 “타겟 CPA 맞추려면 예산 배분 이렇게 조정하면 됩니다”

이게 먹힌다.

초반 2주가 중요하다

  • 데일리 리포트 빠짐없이
  • 작은 성과도 바로 공유
  • 질문에 2시간 안에 답변

귀찮다. 알지만 해야 한다. 2주 버티면 조금 편해진다.

전임자 스타일 버려야 한다 전임자는 주간 리포트만 봤다. 신임자는 데일리를 원한다.

전임자는 카톡 선호했다. 신임자는 이메일 원한다.

맞춰야 한다. 우리가. 광고주가 갑이니까.

한 달이 고비다 한 달 지나면 안다.

  • 이 사람 의사결정 스타일
  • 어떤 데이터 중요하게 보는지
  • 어느 정도 자율권 주는지

B사 신임 담당자. 한 달 됐다. 이제 좀 보인다.

데이터 좋아한다. 숫자로 말해야 한다. 의사결정 빠르다. 제안하면 이틀 안에 답 온다. 야근 안 한다. 6시 이후 연락 안 된다.

패턴 파악됐다. 이제 맞춰서 일하면 된다.

소모전이다

솔직히 말하면 지친다.

5년 동안 담당자 10명 넘게 바꿨다. 매번 처음부터. 매번 신뢰 쌓기. 매번 증명하기.

“우리 잘합니다.” “믿어도 됩니다.” “성과 낼 수 있습니다.”

증명하는 게 일이 됐다. 정작 광고 잘 만드는 건 기본이고.

선배가 말했다. “그래도 너 잘하잖아. 적응 빠르고.”

잘하는 게 아니다. 익숙한 거다. 익숙해지고 싶지 않았는데.

동기가 물었다. “담당자 자주 바뀌는 광고주는 위험 신호 아니야?”

맞다. 그럴 수도 있다. 마케팅팀 이직률 높다는 건 조직이 불안정하다는 거다.

근데 뭐 어쩌겠나. 우리는 에이전시고. 광고주 선택권은 없다.

주어진 사람이랑 일해야 한다.

C사는 2년째 담당자 안 바뀌었다. 편하다. 너무 편하다. 리포트 양식도 안 바꿨다. 미팅도 한 달에 한 번이다.

이런 광고주 하나만 있어도 숨통 트인다.

배운 것들

담당자 여러 명 겪으면서 배웠다.

사람마다 다르다

  • 숫자형 인간: 데이터만 보여줘라
  • 스토리형 인간: 맥락 설명해라
  • 결과형 인간: 결론부터 말해라

처음 2주 안에 파악해야 한다.

전임자 욕하지 마라 신임 담당자가 물어본다. “전에는 어떻게 했나요?”

절대 전임자 탓하면 안 된다. “전 담당자분이 이해를 못 하셔서…” 이러면 신뢰 박살난다.

“전임자분과는 이렇게 진행했고, 상황에 맞춰 조정 가능합니다.”

이게 정답이다.

기록이 무기다 회의록 꼭 쓴다. 결정 사항 정리해서 보낸다. 담당자 바뀌면 이게 증거다.

“3개월 전 회의록 보시면 이렇게 합의하셨습니다.”

문서로 남겨야 한다.

너무 친해지지 마라 전임 담당자랑 친했다. 술도 마셨다. 농담도 많이 했다.

그 사람 퇴사하니까 허전했다. 일하기 싫었다.

친해지면 이별이 힘들다. 적당한 거리 유지해야 한다.

프로페셔널하게. 친근하되 선 넘지 않게.

배운 거다. 아프게.

이번에는

B사 신임 담당자. 두 달 됐다.

어제 미팅에서 말했다. “이번 캠페인 성과 좋네요. 대리님 덕분에 안심하고 일합니다.”

그 말 듣고 좀 풀렸다.

두 달간 쌓은 신뢰다.

  • 빠짐없는 리포트
  • 즉각적인 커뮤니케이션
  • 작은 약속도 지키기

드디어 믿어주는 거다.

근데 알고 있다. 이 사람도 언젠가 바뀐다.

6개월 후일 수도 있고 1년 후일 수도 있고.

그럼 또 처음부터다.

남자친구가 물었다. “그렇게 힘들면 왜 에이전시 다녀?”

대답 못 했다.

좋아서? 아니다. 익숙해서? 맞다.

5년 했으니까. 다른 거 할 줄 모르니까.

그냥 하는 거다.


담당자는 바뀌어도 캠페인은 계속된다. 나도 계속 적응한다. 이게 내 일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