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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e
- 09 Dec, 2025
광고주가 원하는 성과, 기술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오늘도 불가능한 미팅 "CPA를 반으로 줄여주세요. 예산은 그대로요." 광고주 마케팅 팀장이 말했다. 화면 너머로 진지한 얼굴이었다. 나는 3초 정도 멈췄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그게... 현재 입찰 단가가..." 말을 시작했는데 벌써 변명처럼 들렸다. 광고주는 내 말을 자르고 말했다. "경쟁사는 되던데요? A사는 CPA가 우리보다 낮다고 하던데." 나는 노트북 화면을 봤다. 지난 3개월 데이터가 떠 있었다. CPA는 이미 업계 평균보다 낮았다. 더 낮추려면 예산을 늘려서 머신러닝 최적화를 돌리거나, 타겟을 넓혀서 전환 단가가 낮은 구간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예산은 그대로. 타겟은 더 좁혀달라고 했다. 지난주에. "경쟁사 상황은 저희랑 다를 수 있어서..." 또 변명이 됐다. 광고주는 한숨을 쉬었다. "다음 주 보고 때 개선안 가져와주세요." 미팅이 끝났다. 나는 화면을 껐다. 옆자리 동기가 물었다. "또 불가능 미팅?" "응." "말했어? 안 된다고?" "못 했지."불가능을 말하지 못하는 이유 5년 차 AE다. 아직도 '불가능'이란 단어를 꺼내기 어렵다. 이유는 간단하다. 광고주는 내 말을 안 믿는다. "안 돼요"라고 하면 돌아오는 반응은 정해져 있다. "다른 에이전시는 된다던데요?" "노력이 부족한 거 아니에요?" "그럼 우리가 예산을 왜 쓰는 거죠?" 그래서 AE들은 다른 말을 쓴다. "도전적인 목표네요."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일단 테스트해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게 직역하면 전부 "불가능합니다"다. 광고주도 안다. 우리도 안다. 그런데 다들 이 게임을 한다. 왜냐면 "불가능"이란 말을 하는 순간, 관계가 틀어지기 때문이다. 작년에 한 번 해봤다. 광고주가 요구한 ROAS가 기술적으로 불가능했다. 업종 특성상, 전환 주기상, 예산 규모상 절대 안 나오는 숫자였다. 나는 데이터를 준비했다. 업계 벤치마크, 경쟁사 사례, 우리 과거 데이터.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현재 시장 상황에서 이 ROAS는 구조적으로 어렵습니다." 광고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한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 달, 우리는 그 광고주를 잃었다. 경쟁 에이전시가 "해보겠습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그 에이전시가 그 ROAS를 달성했을까? 아니다. 3개월 후에 그 광고주는 다시 에이전시를 바꿨다. 하지만 우리에게 돌아오지는 않았다. 그때부터 나는 배웠다. '불가능'은 맞는 말이지만, 쓸모없는 말이라는 걸.기술적 한계와 기대의 괴리 메타 광고는 머신러닝으로 돌아간다. 최적화 알고리즘이 전환 가능성 높은 사람에게 광고를 보여준다. 그런데 이게 작동하려면 조건이 있다. 7일간 최소 50개 전환. 예산은 목표 CPA의 5배 이상. 타겟은 너무 좁지 않게. 이건 메타가 정한 거다. 나도, 우리 에이전시도 정한 게 아니다. 그런데 광고주는 이렇게 말한다. "예산은 하루 5만원. CPA는 1만원 이하로. 타겟은 25-29세 서울 거주 여성, 관심사는 A, B, C 한정." 계산해봤다. 하루 5명 전환이어야 한다. 25-29세 서울 여성 중에서 관심사 A, B, C를 모두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될까. 도달 가능 규모를 봤다. 12만명. 12만명 중에서 하루 5명이 전환해야 한다. 전환율 0.004%. 불가능하지는 않다. 기적이 일어나면 된다. "타겟을 조금 넓히면 머신러닝이 더 잘 작동할 수 있습니다." 광고주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 고객은 정확히 이 타겟이에요. 다른 사람한테 광고비 쓰고 싶지 않아요." 맞는 말이다. 광고비는 광고주 돈이다. 효율적으로 쓰고 싶은 게 당연하다. 그런데 메타 알고리즘은 광고주 의견을 듣지 않는다. 알고리즘은 데이터만 본다. 데이터가 부족하면 최적화가 안 된다. 이걸 어떻게 설명하지. "머신러닝 최적화가... 데이터 축적이... 학습 기간이..." 말하다 보니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광고주는 더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그래서 되는 거예요, 안 되는 거예요?" 나는 대답했다. "일단 돌려보겠습니다." 대화를 어떻게 끌고 가야 하나 불가능하다고 말해야 할 때가 온다. 그 순간을 피하면 더 나중에 더 큰 문제가 된다. 캠페인을 진행했다. 당연히 목표를 못 맞췄다. 2주 후 보고 미팅. "CPA가 목표의 2배예요. 왜 이래요?" 이제 설명이 더 어렵다. 2주 전에 말했어야 했는데, 안 했으니까. "타겟이 좁아서 최적화가..." "그럼 왜 처음부터 말 안 했어요?" 할 말이 없다. 나는 동기들한테 물었다. 너희는 어떻게 하냐고. 다들 비슷했다. 일단 돌린다. 안 되면 그때 설명한다. 그러다 광고주를 잃거나, 계속 스트레스받거나. 한 선배가 말했다. "불가능하다고 말하되, 대안을 주면 돼." "대안이 없으면요?" "그럼 차선책이라도." "차선책도 거부하면요?" "그럼 일단 해. 그리고 데이터로 증명해." 결국 답은 없다. 상황마다 다르다. 그런데 한 가지는 배웠다. '불가능'이란 단어를 쓰지 말고, '제약'이란 단어를 쓰는 거. "이건 안 됩니다" 대신 "현재 이런 제약이 있습니다." "불가능합니다" 대신 "이 조건에서는 A가 제약이고, B를 조정하면 가능성이 생깁니다." 말이 길어지지만, 듣는 사람은 덜 거부감을 느낀다. 조금.어제의 대화 어제 또 미팅이 있었다. 새 광고주. 첫 미팅. 마케팅 담당자가 목표를 말했다. ROAS 800%. 경쟁사는 된다고 한다. 나는 3초 멈췄다. 그리고 노트북을 열었다. "업종 벤치마크 자료 보여드려도 될까요?" 자료를 공유했다. 같은 업종 평균 ROAS는 300-400%였다. "경쟁사가 800%라고 하셨는데, 측정 방식을 여쭤봐도 될까요?" 광고주가 말했다. 경쟁사는 GA4 기준이라고 들었다고. "저희는 광고 플랫폼 기준으로 측정합니다. GA4는 어트리뷰션 윈도우가 달라서 보통 20-30% 높게 나옵니다. 혹시 경쟁사 대시보드를 보신 적 있으세요?" 없다고 했다. 들은 얘기라고 했다. "일단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3개월 데이터를 보면서 조정하는 게 어떨까요? 800%를 목표로 하되, 1차 목표는 업계 평균인 400%로 두고요." 광고주가 물었다. "그럼 800%는 불가능하다는 거예요?" 나는 대답했다. "현재 시장 데이터상으로는 도전적인 목표입니다. 가능성을 열어두되, 현실적 1차 목표와 병행하면 좋겠습니다." 광고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일단 시작해보죠." 미팅이 끝났다. 이게 정답인지는 모르겠다. 3개월 후에 알겠지. 그래도 오늘은 '불가능'이란 말을 안 하면서도, 현실을 말했다. 조금. 불가능을 말하는 기술 5년 차가 되니까 조금 알 것 같다. '불가능'은 맞는 말이지만, 관계를 끊는 말이다. 광고주는 가능성을 사는 거다. 에이전시는 가능성을 파는 거다. '불가능'은 그 거래를 깬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말을 찾는다. "도전적이지만 해보겠습니다." "A안은 제약이 있고, B안은 가능성이 있습니다." "1차 목표와 최종 목표를 나눠서 진행하면 어떨까요." 이게 거짓말일까? 아니다. 정말로 해본다. 최선을 다한다. 데이터를 보고 조정한다. 다만 광고주가 원하는 결과가 안 나올 수 있다는 걸, 돌려서 말하는 거다. 그리고 정말로 불가능하면, 그때 데이터로 보여준다. "3개월 돌렸습니다. 이게 한계입니다. 이유는 A, B, C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안 됩니다"라고 하면 안 믿는다. 해보고 나서 "안 됐습니다"라고 하면 믿는다. 비효율적이다. 3개월을 돌려야 아는 걸, 처음부터 알 수 있는데. 그런데 이게 현실이다. 나는 동기한테 물었다. 너는 언제 '불가능'이란 말을 하냐고. "광고주가 물어볼 때." "물어보기 전에는?" "안 해. 물어봐도 안 할 때 많아." "그럼 언제 해?" "관계가 끊어져도 상관없을 때." 맞는 말이다. 오늘의 숙제 오늘도 숙제가 남았다. 다음 주 광고주 미팅. CPA 절반으로 낮추는 개선안. 불가능하다.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런데 나는 자료를 만들 거다. A안: 예산 증액으로 학습 데이터 확보 B안: 타겟 확대로 최적화 풀 확대 C안: 크리에이티브 대량 테스트로 CTR 개선 셋 다 CPA를 절반으로 낮추지는 못한다. 10-20% 개선이 현실적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를 하면서 데이터를 쌓으면, 3개월 후에는 말할 수 있다. "이게 한계입니다." 그때는 광고주도 믿는다. 우리가 최선을 다했다는 걸. 비효율적이다. 처음부터 말하면 3개월을 아낄 수 있는데. 그런데 이게 AE의 일이다. 불가능을 말하지 않으면서, 불가능을 증명하는 일.7시 반이다. 퇴근까지 30분. 개선안 자료는 반쯤 만들었다. 내일 마저 해야지. 오늘은 8시에 나간다. 야근 아니다.
- 07 Dec, 2025
좋은 성과가 나왔다, 슬랙에 캡처 공유하는 그 쾌감
아침 10시, ROAS 278%출근해서 대시보드 켰다. ROAS 278%. 눈 비볐다. 다시 봤다. 278%. 어제 밤 11시까지 광고 소재 10개 교체했다. CPA가 계속 올라가서 광고주한테 뭐라고 말할지 고민하다가 소재 문제일 거 같아서 디자이너한테 급하게 부탁했다. "내일 아침까지만요" 했더니 한숨 쉬면서 해줬다. 그게 먹혔다. 전환수 어제 대비 340%. 클릭률 2.8%에서 4.1%로. CPA는 32,000원에서 19,000원으로. 손 떨렸다. 캡처했다. 슬랙 열었다. 슬랙에 올리는 순간"오늘 아침 성과 공유드립니다🔥" 캡처 세 장 올렸다. 대시보드, 전환 그래프, 소재별 성과. 3초 만에 이모지 달렸다. 👍 🔥 💯 대표님이 제일 먼저. "굿!!" 그 다음 팀장. "오 이거 뭐 했어요?" 디자이너. "헐 대박" 미디어플래너. "이 소재였구나" 다른 AE들도 축하 이모지 줬다. 다들 자기 일로 바쁜데도. 이 순간이 좋다. 광고주 보고 오전 11시에 광고주한테 카톡 보냈다. "안녕하세요, 어제 소재 교체 후 성과 급상승했습니다. ROAS 278% 찍었어요!" 캡처 두 장 첨부. 1분 만에 답장. "오 좋네요!! 이 소재 예산 더 태워주세요" "네 바로 반영하겠습니다👌" 이런 대화가 얼마나 오랜만인지. 보통은 "CPA 왜 올랐어요?", "경쟁사는 더 잘 나온대요", "예산 대비 효율 안 나오는데요" 이런 거였다. 지난주만 해도 광고주 담당자가 "다른 에이전시 검토 중이에요"라고 했다. 그때 진짜 속 쓰렸다. 밤새 대안 찾았다. 소재 전략 바꾸고, 타겟 조정하고, 입찰가 최적화하고. 그게 오늘 결과로 나왔다. 팀 회의에서오후 3시 주간 회의. 팀장이 말했다. "이번 주 베스트는 OO님 캠페인이죠. 공유 좀 해주세요." 내 차례 왔다. "저번주에 CPA가 계속 오르고 있어서요. 소재가 문제라고 판단했습니다. 기존에는 제품 나열형이었는데, 혜택 강조형으로 바꿨어요. 디자이너님이 밤늦게까지 도와주셔서 가능했습니다." 디자이너가 손 흔들었다. "아니에요~" "그리고 타겟도 좁혔습니다. 25-34세 여성, 관심사 뷰티+패션 조합으로. 예산은 같은데 효율이 3배 올랐어요." 팀장이 고개 끄덕였다. "좋습니다. 이 케이스 전사 공유하죠." 대표님이 말했다. "보너스 건 따로 얘기합시다." 이럴 때 에이전시 다니는 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디자이너한테 감사 인사 회의 끝나고 디자이너한테 갔다. "어제 급하게 부탁드려서 죄송했어요. 덕분에 대박 났습니다." "아 다행이다. 사실 어제 9시까지 다른 작업 있었는데 급하다길래..." "저녁 제가 살게요. 언제 편하세요?" "이번 주 금요일?" "오케이. 제가 예약할게요." 협업이 잘 되는 디자이너 한 명 있으면 AE 일이 반은 쉬워진다. 진짜다. 광고주 요구사항 이해하고, 빠르게 작업해주고, 피드백 받아서 수정도 잘 해주고. 에이전시에서 디자이너랑 사이 좋으면 살아남는다. 왜 이 순간이 중요한가 성과 좋을 때 슬랙에 공유하는 게 단순히 자랑이 아니다. 이게 에너지다. 팀 전체의. 우리 일은 숫자로 증명된다. ROAS, CPA, CTR, CVR. 이게 안 나오면 다 헛수고다. 광고주는 과정 안 본다. 결과만 본다. 그래서 좋은 성과 나오면 공유해야 한다. 팀원들한테 "우리 잘하고 있다"는 신호. 특히 야근 많이 하는 시즌에는 이런 게 버팀목이다. 지난달에 다른 AE가 캠페인 망쳤다. 광고주가 계약 해지했다. 그때 분위기 정말 안 좋았다. 다들 조용했다. 회의 때도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한 명이 좋은 성과 공유했다. 슬랙에 올렸다. 분위기가 조금씩 풀렸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느낌. 성과 공유는 팀 사기 관리다. 혼자 일하는 게 아니다 AE는 광고주 창구지만 실제로는 팀플레이다. 미디어플래너가 매체 최적화 해준다. 디자이너가 소재 만들어준다. 개발자가 전환 트래킹 심어준다. 팀장이 광고주 협상 도와준다. 내 이름으로 보고하지만 결과는 다 같이 만든 거다. 그래서 성과 나오면 공유하고 감사 표현해야 한다. "디자이너님 덕분에", "플래너님이 매체 잘 잡아주셔서" 이런 멘트. 이게 쌓이면 다음에 급할 때 도움 받기 쉽다. 협업은 관계다. 광고주 신뢰 쌓기 오늘 같은 성과가 나오면 광고주 신뢰가 확 올라간다. 지금까지는 "이 에이전시 괜찮나?" 싶었을 거다. 성과 안 나오고, 리포트만 길고, 변명 같은 해석만 많고. 근데 한 번 확실하게 터지면 달라진다. "역시 이 에이전시 실력 있네" 이렇게 된다. 그 다음부턴 일하기 편하다. 예산 더 달라고 하면 받아준다. 새 캠페인 제안하면 들어준다. 실수해도 이해해준다. 신뢰는 한 번에 안 쌓인다. 꾸준히 해야 한다. 그래도 오늘 같은 날은 한 계단 올라가는 느낌이다. 저녁 8시, 퇴근길 오늘은 일찍 나왔다. 8시. 지하철에서 슬랙 다시 봤다. 아침에 올린 글에 이모지 30개 달렸다. 댓글도 몇 개 더 있었다. "축하합니다!" "다음 주도 파이팅!" "저도 열심히 해야겠네요" 웃음 나왔다. 이래서 에이전시를 못 떠난다. 성과 나왔을 때 이 에너지. 팀원들이랑 나누는 이 순간. 물론 내일 모레면 또 CPA 올라갈 수도 있다. 광고주가 예산 줄이자고 할 수도 있다. 새 캠페인 기획하느라 야근할 수도 있다. 그래도 오늘 같은 날이 있으니까 버틴다. 집 가서 맥주 한 캔 마셔야겠다. 오늘은 내가 나한테 축하해줄 거다.오늘은 내 날이었다. 내일은 또 모르지만.
- 05 Dec, 2025
경쟁사 광고를 봤다, 캡처한다, 보낸다 - AE의 주말
경쟁사 광고를 봤다, 캡처한다, 보낸다 - AE의 주말 토요일 오전 11시, 카페 친구가 늦는다고 문자 왔다. 혼자 앉아서 아이스아메리카노 마신다. 인스타그램 켠다. 피드 스크롤하다가 멈췄다. 광고주 경쟁사 광고다. 자동으로 캡처했다."신제품 프로모션인가." 소재 확대해서 본다. 배너 카피 메모한다. "첫 구매 20% 할인". 우리는 15%였다. 댓글 확인한다. 반응 괜찮다. '좋아요' 3800개. 댓글 120개. 우리 캠페인은 2200개였다. 노트 앱 켠다.경쟁사 A / 인스타 피드 광고 소재: 제품 단독컷 + 할인율 강조 카피: 직관적, 혜택 중심 반응: 우리보다 약 1.7배저장했다. 친구 왔다. "뭐해?" "아무것도." 폰 뒤집어 놓는다. 그런데 머릿속은 그 광고다. 할인율을 올려야 하나. 소재를 저렇게 심플하게 가야 하나. 친구 말이 안 들린다. "야, 너 듣고 있어?" "응, 듣고 있어." 거짓말이다. 영화관 대기줄, 오후 3시 팝콘 사려고 줄 선다. 앞에 10명 정도다. 또 폰 꺼낸다. 유튜브 앱 켠다. 쇼츠 들어간다. 세 번째 영상에 광고 나온다.또 경쟁사다. 이번엔 다른 광고주 꺼다. 6초짜리 범퍼 광고. 캡처할 수 없다. 화면 녹화 시작한다. 광고 끝났다. 다시 돌린다. 프레임 하나하나 본다.첫 2초: 후킹 카피 중간 2초: 제품 시연 마지막 2초: CTA우리 영상은 8초인데. 6초로 줄여도 되는 거 아닌가. 광고비 30% 아낄 수 있다. 슬랙 켠다. 미디어플래너한테 보낸다. "이거 보세요. 경쟁사 범퍼 광고 효율 좋을 것 같은데." 토요일인데 보냈다. 답 안 온다. 당연하다. 주말이니까. 나도 일하는 건 아니다. 그냥 본 거다. 거짓말이다. 이게 일이다. 팝콘 받았다. 영화관 들어간다. 본편 시작 전 광고 또 나온다. 또 본다. 습관이다. 저녁 약속, 7시 남자친구 만났다. 홍대 맛집이래서 왔다. 웨이팅 30분이다. 대기 중에 또 폰 본다. 페이스북 켠다. 피드 광고 3개 지나간다. 하나 캡처했다. 광고주는 아니고 같은 카테고리다. 소재가 신선하다. "또 일해?" 남자친구가 말한다. "아니, 그냥 봤어." "주말인데." "응, 알아." 알지만 못 멈춘다. 경쟁사 광고가 눈에 들어오면 자동이다. 캡처 - 분석 - 메모 - 공유. 습관화됐다. 직업병이다."너 진짜 쉬는 날이 없네." 남자친구 말이 맞다. 쉬는 날이 없다. 마음이 안 쉰다. 몸은 카페에 있어도 머리는 캠페인이다. 영화 보는데 광고 분석한다. "미안, 안 볼게." 폰 가방에 넣는다. 5분 버텼다. 진동 왔다. 광고주다. "다음 주 예산 추가 가능할까요?" 주말인데 연락 온다. 대리가 받아야 한다. 답장 쓴다. "검토해보고 월요일에 말씀드릴게요." 보냈다. 남자친구가 한숨 쉰다. "야, 너 번아웃 온다." "아직 괜찮아." 거짓말이다. 벌써 왔다. 집 침대, 밤 11시 하루 끝났다. 침대에 누웠다. 피곤한데 잠이 안 온다. 폰 켠다. 캡처 폴더 연다. 오늘 저장한 광고 7개다. 하나씩 다시 본다.인스타 피드 광고 3개 유튜브 범퍼 광고 1개 페이스북 동영상 광고 2개 네이버 DA 배너 1개정리한다. 노션에 표 만든다. 광고주별, 매체별, 소재 유형별. 월요일에 팀 회의 때 공유할 거다. "주말에 경쟁사 모니터링 좀 했는데요." 이렇게 말할 거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다. KPI에도 없다. 그냥 한다. 왜 하는지 모르겠다. 안 하면 불안하다. 경쟁사가 뭐 하는지 모르는 게 싫다. 우리 광고주가 지는 게 싫다. ROAS 지는 게 싫다. 다음 미팅에서 "경쟁사는 이렇게 하던데요" 듣는 게 싫다. 그래서 먼저 본다. 먼저 캡처한다. 먼저 분석한다. 에이전시 AE가 이렇다. 쉬어도 안 쉰다. 머리가 항상 켜져 있다. 폰 끈다. 잠들려고 한다. 근데 생각난다. 내일 일요일인데 카페 갈까. 노트북 가져가서 리포트 좀 만들까. 월요일 아침이 편할 거다. 거짓말이다. 월요일은 또 바쁘다. 일요일 오후, 카페 또 왔다 결국 나왔다. 노트북 켰다. 리포트 연다. 주간 성과 정리한다.광고주 A: CPA 15% 개선 광고주 B: ROAS 120% 유지 광고주 C: 예산 소진율 95%숫자 보면 마음이 편하다. 잘하고 있다는 증거니까. 그런데 또 불안하다. 다음 주는 어떻게 될까. 경쟁사는 뭐 준비하고 있을까. 인스타 켠다. 또 광고 본다. 또 캡처한다. 친구한테 문자 왔다. "너 오늘 뭐 해?" "카페에서 쉬어." 거짓말이다. 일한다. "주말인데 집에서 쉬지." "응, 나중에 들어갈게." 안 들어간다. 해질 때까지 있을 거다. AE가 이렇다. 주말도 일한다. 근무시간이 따로 없다. 경쟁사 광고가 올라오는 시간이 근무시간이다. 24시간이다. 365일이다. 이게 맞나 싶다 가끔 생각한다. 이게 맞는 삶인가. 주말에 카페 와서 광고 캡처하고. 영화 보다가 경쟁사 분석하고. 친구 만나도 폰 보고. 번아웃 온 것 같다. 아니, 벌써 왔다. 그런데 못 멈춘다. 이게 습관이 됐다. 이게 정체성이 됐다. "나는 에이전시 AE다." "경쟁사 모니터링은 기본이다." "쉬는 날에도 일한다." 자랑은 아니다. 자랑할 것도 아니다. 그냥 현실이다. 에이전시가 이렇다. 동기들도 다 그렇다. 주말에 슬랙 켠다. 새벽에 대시보드 본다. "우리 미쳤나?" 단톡방에 물었다. "ㅇㅇ 미쳤음" "근데 안 하면 불안함" "월요일에 광고주가 물어보면?" 다들 안다. 이게 이상한 거. 그런데 못 고친다. 이게 에이전시 생존법이니까. 5년 차가 이렇다. 10년 차는 어떨까. 상상이 안 된다. 이직해야 하나. 인하우스 가야 하나. 거기는 주말에 쉴 수 있을까. 모르겠다. 일단 오늘은 캡처한다. 경쟁사 광고 또 올라왔다. 또 본다. 또 저장한다.일요일 저녁 7시. 카페 나왔다. 캡처 폴더에 광고 12개 더 들어갔다. 월요일이 기다려진다. 거짓말이다. 월요일이 무섭다.
- 03 Dec, 2025
광고주 담당자가 바뀌었다, 다시 시작이다
또 바뀌었다 화요일 아침 9시 반. 슬랙 알림. "안녕하세요, 이번에 OO팀 담당하게 된 김민수입니다." 커피 한 모금 넘기다가 목이 막혔다. 세 번째다. 올해만. B사 담당자가 또 바뀐 거다. 전임자랑 6개월 일했다. 이제 좀 편해졌는데. CPA 목표도 합의했고, 리포트 양식도 맞췄고. 농담도 주고받는 사이였다. 이제 다시 처음부터다. 전화 왔다. 신임 담당자. "이번 주 중으로 미팅 가능하신가요?" 가능하죠. 당연히 가능하죠. 끊고 나서 한숨 나왔다. 온보딩 자료 다시 만들어야 한다.신뢰는 0부터 목요일 오후 3시. 광고주 사무실. 신임 담당자 앞에 앉았다. "현재 진행 중인 캠페인 설명 부탁드립니다." 준비해 간 자료 펼쳤다.지난 6개월 성과 트렌드 월별 예산 소진율 채널별 ROAS 개선 히스토리30분 설명했다. "아, 네. 검토해볼게요." 표정이 안 읽힌다. 믿는 건지 의심하는 건지. 당연하다. 처음 보는 사람이니까. 전임자한테는 안 보내도 되던 데일리 리포트. 이 사람한테는 다 보내야 한다. "경쟁사는 어떻게 하고 있나요?" "예산 증액하면 ROAS 유지 가능한가요?" "왜 CPC가 오른 건가요?" 대답했다. 하나하나. 설명했다. 자세하게. 미팅 끝나고 나왔다. 2시간 걸렸다. 사무실 돌아와서 동기한테 말했다. "담당자 또 바뀌었어." "헐. 몇 번째야?" "올해만 세 번째." 동기가 웃었다. "에이전시 숙명이지 뭐."매번 증명해야 한다 신임 담당자는 뭘 봤을까.전임자가 합의한 KPI? 모른다. 6개월간 쌓은 성과? 의심스럽다. 우리 에이전시 역량? 확인 필요하다.당연하다. 그 사람 입장에서는 우리가 낯선 외주업체다. 전임자는 알았다.우리가 밤새워서 캠페인 모니터링한다는 것 소재 A/B테스트 20번 돌린다는 것 예산 효율 0.1%까지 신경 쓴다는 것신임 담당자는 모른다. 증명해야 한다. 다시. 금요일. 데일리 리포트 보냈다. 토요일. 주말인데 캠페인 성과 급등. 캡처해서 카톡 보냈다. "주말 트래픽 좋습니다. 예산 증액 고려하시겠어요?" 답 없다. 월요일 오전에 답 왔다. "네, 검토하겠습니다." 검토. 그 단어가 제일 싫다. 전임자는 바로 결정했는데. 화요일. 경쟁사 광고 보고서 보냈다. 수요일. 업계 트렌드 아티클 공유했다. 목요일. 우리 캠페인 개선안 3개 제안했다. 답은 짧다. "감사합니다." "확인했습니다." 신뢰는 시간이 필요하다. 알지만 답답하다.그래도 방법은 있다 세 번 겪으니까 패턴이 보인다. 신임 담당자 온보딩에 필요한 것들. 첫 미팅 때 챙길 것과거 성과 아닌 현재 계획 문제점 아닌 해결책 숫자 나열 아닌 인사이트"ROAS 150% 달성했습니다" 보다 "타겟 CPA 맞추려면 예산 배분 이렇게 조정하면 됩니다" 이게 먹힌다. 초반 2주가 중요하다데일리 리포트 빠짐없이 작은 성과도 바로 공유 질문에 2시간 안에 답변귀찮다. 알지만 해야 한다. 2주 버티면 조금 편해진다. 전임자 스타일 버려야 한다 전임자는 주간 리포트만 봤다. 신임자는 데일리를 원한다. 전임자는 카톡 선호했다. 신임자는 이메일 원한다. 맞춰야 한다. 우리가. 광고주가 갑이니까. 한 달이 고비다 한 달 지나면 안다.이 사람 의사결정 스타일 어떤 데이터 중요하게 보는지 어느 정도 자율권 주는지B사 신임 담당자. 한 달 됐다. 이제 좀 보인다. 데이터 좋아한다. 숫자로 말해야 한다. 의사결정 빠르다. 제안하면 이틀 안에 답 온다. 야근 안 한다. 6시 이후 연락 안 된다. 패턴 파악됐다. 이제 맞춰서 일하면 된다. 소모전이다 솔직히 말하면 지친다. 5년 동안 담당자 10명 넘게 바꿨다. 매번 처음부터. 매번 신뢰 쌓기. 매번 증명하기. "우리 잘합니다." "믿어도 됩니다." "성과 낼 수 있습니다." 증명하는 게 일이 됐다. 정작 광고 잘 만드는 건 기본이고. 선배가 말했다. "그래도 너 잘하잖아. 적응 빠르고." 잘하는 게 아니다. 익숙한 거다. 익숙해지고 싶지 않았는데. 동기가 물었다. "담당자 자주 바뀌는 광고주는 위험 신호 아니야?" 맞다. 그럴 수도 있다. 마케팅팀 이직률 높다는 건 조직이 불안정하다는 거다. 근데 뭐 어쩌겠나. 우리는 에이전시고. 광고주 선택권은 없다. 주어진 사람이랑 일해야 한다. C사는 2년째 담당자 안 바뀌었다. 편하다. 너무 편하다. 리포트 양식도 안 바꿨다. 미팅도 한 달에 한 번이다. 이런 광고주 하나만 있어도 숨통 트인다. 배운 것들 담당자 여러 명 겪으면서 배웠다. 사람마다 다르다숫자형 인간: 데이터만 보여줘라 스토리형 인간: 맥락 설명해라 결과형 인간: 결론부터 말해라처음 2주 안에 파악해야 한다. 전임자 욕하지 마라 신임 담당자가 물어본다. "전에는 어떻게 했나요?" 절대 전임자 탓하면 안 된다. "전 담당자분이 이해를 못 하셔서..." 이러면 신뢰 박살난다. "전임자분과는 이렇게 진행했고, 상황에 맞춰 조정 가능합니다." 이게 정답이다. 기록이 무기다 회의록 꼭 쓴다. 결정 사항 정리해서 보낸다. 담당자 바뀌면 이게 증거다. "3개월 전 회의록 보시면 이렇게 합의하셨습니다." 문서로 남겨야 한다. 너무 친해지지 마라 전임 담당자랑 친했다. 술도 마셨다. 농담도 많이 했다. 그 사람 퇴사하니까 허전했다. 일하기 싫었다. 친해지면 이별이 힘들다. 적당한 거리 유지해야 한다. 프로페셔널하게. 친근하되 선 넘지 않게. 배운 거다. 아프게. 이번에는 B사 신임 담당자. 두 달 됐다. 어제 미팅에서 말했다. "이번 캠페인 성과 좋네요. 대리님 덕분에 안심하고 일합니다." 그 말 듣고 좀 풀렸다. 두 달간 쌓은 신뢰다.빠짐없는 리포트 즉각적인 커뮤니케이션 작은 약속도 지키기드디어 믿어주는 거다. 근데 알고 있다. 이 사람도 언젠가 바뀐다. 6개월 후일 수도 있고 1년 후일 수도 있고. 그럼 또 처음부터다. 남자친구가 물었다. "그렇게 힘들면 왜 에이전시 다녀?" 대답 못 했다. 좋아서? 아니다. 익숙해서? 맞다. 5년 했으니까. 다른 거 할 줄 모르니까. 그냥 하는 거다.담당자는 바뀌어도 캠페인은 계속된다. 나도 계속 적응한다. 이게 내 일이니까.
- 02 Dec, 2025
ROAS 2배 올려달라는 광고주, 예산은 그대로다
ROAS 2배 올려달라고? 예산은 그대로인데 월요일 9시 30분. 출근했다. 피곤하다. 지난주 금요일 미팅에서 받은 메일을 다시 읽었다. 광고주 마케팅 담당자가 보낸 건데, 제목은 "다음 달 성과 목표 조정 안내"였다. 내용은 명확했다. ROAS 2배. 예산은 현재 수준 유지. 채널별 배분은 자유롭게. "자유롭게"가 웃겼다. 자유롭게 뭘 한다는 건데. 예산이 똑같은데 성과를 2배로 낸다고? 수학이 안 되는 건데도 마케팅에서는 가능한 줄 안다. 커피를 마셨다. 첫 잔이다. 오늘 하루에 몇 잔을 더 마실지 모르겠다. 대시보드를 켰다. 지난달 광고주 계정의 ROAS는 2.8배였다. 나쁘지 않은 수치다. 업계 평균이 2.5배인데 그보다 0.3배 높다. 그런데도 이 요청이 왔다. 왜? 광고주 상사가 경영진한테 뭔가 약속했나 봤다. "마케팅팀은 월 5% 성과 향상을 담당할 거야"라던가. 그리고 그 5%가 매달 누적되면서 결국 2배가 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나온 거다. 수학적으로는 맞는데, 마케팅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광고주한테 "그건 좀..."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이유 지난 세 해 동안 느낀 게 있다. AE 일은 곧 마법사 일처럼 여겨진다는 것. 광고주는 생각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도 성과가 2.8배니까, 좀 더 노력하면 3배, 4배도 가능할 거라고. 마치 마케팅이 직선 그래프처럼 올라간다고. 근데 우린 안다. ROAS는 매 광고에서 점점 낮아진다는 걸. 초반 1000원 쓸 때는 2800원을 벌지만, 계속 더 쓰다 보면 CPM이 올라가고 오디언스가 포화되고 CTR은 떨어진다. 그래서 3배를 유지하려면 예산을 줄여야 한다. 오히려. 근데 광고주는 안 본다. "성과 더 내세요"라는 말 뒤에는 항상 "예산은 지금대로"가 숨어있다. 어제 회의에서 미디어플래너 준호한테 확인했다. "준호, ROAS 2배 올리려면 예산 얼마나 줘야 해?" "대리님, 불가능하다고 했어요. ROI 그래프 보면 1억을 6월부터 4000만으로 줄여야 2배 다시 올라와요." "그럼 예산을 더 주면?" "그럼 ROAS는 1.5배까지 떨어진다고 했어요." 우리 에이전시 대표도 알고, 준호도 안다. 그런데 광고주 입장에선 "더 팔아야 하니까 광고도 더 돌려달라"가 되고, 그 광고를 더 돌리려면 예산이 많아야 하고, 그럼 자동으로 효율은 떨어진다. 악순환이다. 그런데도 나는 "검토하겠습니다"라고만 말했다. "그건 좀 어렵습니다"라고 못 했다. 왜? 광고주가 다음달에 예산을 4배로 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 ROAS는 또 내가 못한 탓이 되고, 담당자는 바뀌고, 모든 신뢰는 처음부터 다시 쌓아야 한다. 그래서 난 "검토"라고 했다. 검토라는 단어는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니까.숫자로 설득하려고 하는데 숫자가 자리를 안 잡아 회의 전에 자료를 만들었다. 1페이지: 지난 3개월 월별 ROAS 추이 (상승 그래프) 2페이지: 광고비 대비 실제 매출 기여도 (우리는 6500만원 광고비로 1억 8200만원 매출) 3페이지: 경쟁사 벤치마크 (업계 ROAS 평균 대비 우리 성과) 4페이지: 채널별 최적 예산 배분안 (5% 더 효율 낼 수 있는 시나리오) 숫자는 완벽했다. 그래프도 깔끔했다. 디자이너 혜진이가 예쁘게 만들었다. 그런데 광고주 담당자는 첫 장만 봤다. "ROAS 2.8배면 충분하지 않습니까?"라고 물었다. 내 대답은 준비되어 있었다. "현재 ROAS 수준을 유지하면서 추가 성장은 예산 증액이 필수입니다. 만약 예산을 유지하고 ROAS를 2배 올리려면..." 그 다음이 문제였다. 뭐라고 말해야 했다. "CPA 최적화와 오디언스 타게팅 고도화를 통해 시도해보겠습니다"? 이건 아무 의미 없는 말이다. 이미 3달 동안 다 해봤다. 오디언스는 더 이상 좁힐 수 없고, CPA는 이미 바닥이고, 크리에이티브도 4주마다 번갈아가며 테스트하고 있다. 그래서 난 말했다. "현실적으로는 어려울 거 같습니다만, 5% 정도는 개선 여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대신 리스크가 있습니다." 광고주: "무슨 리스크요?" "만약 실패하면 ROAS가 현재보다 낮아질 수 있습니다." 그 순간 광고주 표정이 굳었다. 결론은 다시 "검토하겠습니다"였다.매달 같은 질문을 받는 이유 이게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닐 거라는 게 문제다. 이 광고주 담당자는 작년에도 같은 얘기를 했다. "ROAS 올려달라"고. 그땐 예산을 10% 줬다. 그럼 ROAS는 당연히 떨어졌다. 광고비 6000만원에서 6600만원으로 늘어나면서 CPM은 올라가고, 오디언스는 이미 본 사람들이 계속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2.9배에서 2.6배가 되었다. 그럼 또 "ROAS 떨어졌다"고 한다. 그때 우린 채널 변경을 제안했다. 네이버에서 구글로. 그럼 ROAS는 3.2배가 되었다. 그런데 도달 수가 줄었다. 그럼 또 "도달을 늘려달라"고 한다. 그래서 또 예산을 넣었다. 6개월 전 이 시점에 예산이 6000만원이었는데 지금은 7500만원이다. 그리고 ROAS는 2.8배다. 25% 더 썼는데 ROAS는 -3.4% 떨어진 거다. 그런데도 자꾸만 "더 해달라"고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마케팅을 그래프처럼 생각하기 때문이다. 직선으로 올라가는 그래프. 근데 현실은 곡선이고, 어느 순간부터 수평선이 되고, 심하면 내려간다. 광고주는 그 곡선의 방정식을 모른다. 몰라도 된다. 근데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리고 설득해야 한다. 근데 설득이 안 된다. 왜냐면 광고주는 AE를 결국 "비용 센터"로 보기 때문이다. "우리 매출을 올려줘야 할 책임이 있는 부서"로. 그래서 항상 더 많은 결과를 요구한다. 예산 대비. 시간 대비. 내 동기 준은 작년에 같은 이유로 번아웃 왔다. 광고주가 자꾸만 달라는 대로 하다 보니, 팀원들도 내내 야근하게 되고, 결과는 나오지 않고, 자존감이 떨어졌대. 지금 다른 회사로 옮겼다. 인하우스 마케팅팀으로. [IMAGE_4] 그럼 뭘 해야 하나 금요일 오후 3시. 이 광고주 담당자한테 전화를 걸었다. "ROAS 2배에 대해서 말인데요,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가 있어요. 5% 정도. 그런데 그것도 리스크가 있고요. 혹은 예산을 증액해주시면 현재 ROAS 수준을 유지하면서 더 많은 매출을 만들 수 있어요." 광고주: "그게 무슨 뜻인가요?" "지금 6500만원으로 1억 8200만원 매출을 만들고 있는데, 예를 들어 7500만원으로 가면 2억 2000만원 정도 매출을 만들 수 있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ROAS는 2.7배 정도 될 거고요." "...더 많은 매출이 목표니까 그게 맞는데, 위에선 효율을 원하셔요." "그게 문제예요. 매출을 원하면 예산을 주셔야 하고, 효율을 원하면 매출을 약간 포기해야 해요. 동시에 둘 다 하기는 불가능합니다." 침묵이 있었다. 그 침묵이 5초쯤 됐을 때 광고주가 말했다. "상사분하고 얘기해보고 연락드릴게요." "좋습니다." 끊었다. 이제 며칠을 기다려야 한다. 광고주 상사가 뭐라고 할지. 예산을 더 줄지 현 수준에서 ROAS 5% 개선을 받아들일지. 아니면 다른 에이전시로 바꿀지. 에이전시 하는 입장에선 항상 이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간다. 근데 하나 느낀 게 있다. 이번엔 좀 다른 것 같았다. "더 해주세요" 대신 "우리가 뭘 원하는지 확실히 하세요"라는 답변이 나왔기 때문이다. 혹은 내가 처음으로 명확하게 "그건 불가능하다"고 말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IMAGE_5] 매달 고민, 매달 현실 이제 거의 야근 시간이다. 8시가 되려고 한다. 리포트를 마무리하면서 생각했다. 이게 반복되는 건 왜일까. 광고주도 나쁜 사람이 아니다. 그냥 위에서 시킨 일을 해야 한다. 나도 나쁜 사람이 아니다. 그냥 광고주가 시킨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 사이에서 계속 "더 해달라", "조금 더", "내일까지"가 반복된다. 에이전시 5년 차인 지금, 이직을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가 이거다. 불가능한 요청을 계속 받고, 그걸 "검토하겠습니다"로 받아주고, 최선을 다한 뒤에도 "부족합니다"라는 말을 듣는 반복. 근데 인하우스로 가도 마찬가지일 거다. 위에서 계속 "더"를 외칠 테니까. 그래서 다음달에도 같은 광고주 담당자로부터 같은 메일을 받을 것 같다. "다음달 ROAS 목표 조정..." 그리고 난 또 "검토하겠습니다"라고 할 거고.예산 없이 성과를 원하는 건 마케팅이 아니라 기적을 바라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