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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배
- 02 Dec, 2025
ROAS 2배 올려달라는 광고주, 예산은 그대로다
ROAS 2배 올려달라고? 예산은 그대로인데 월요일 9시 30분. 출근했다. 피곤하다. 지난주 금요일 미팅에서 받은 메일을 다시 읽었다. 광고주 마케팅 담당자가 보낸 건데, 제목은 "다음 달 성과 목표 조정 안내"였다. 내용은 명확했다. ROAS 2배. 예산은 현재 수준 유지. 채널별 배분은 자유롭게. "자유롭게"가 웃겼다. 자유롭게 뭘 한다는 건데. 예산이 똑같은데 성과를 2배로 낸다고? 수학이 안 되는 건데도 마케팅에서는 가능한 줄 안다. 커피를 마셨다. 첫 잔이다. 오늘 하루에 몇 잔을 더 마실지 모르겠다. 대시보드를 켰다. 지난달 광고주 계정의 ROAS는 2.8배였다. 나쁘지 않은 수치다. 업계 평균이 2.5배인데 그보다 0.3배 높다. 그런데도 이 요청이 왔다. 왜? 광고주 상사가 경영진한테 뭔가 약속했나 봤다. "마케팅팀은 월 5% 성과 향상을 담당할 거야"라던가. 그리고 그 5%가 매달 누적되면서 결국 2배가 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나온 거다. 수학적으로는 맞는데, 마케팅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광고주한테 "그건 좀..."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이유 지난 세 해 동안 느낀 게 있다. AE 일은 곧 마법사 일처럼 여겨진다는 것. 광고주는 생각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도 성과가 2.8배니까, 좀 더 노력하면 3배, 4배도 가능할 거라고. 마치 마케팅이 직선 그래프처럼 올라간다고. 근데 우린 안다. ROAS는 매 광고에서 점점 낮아진다는 걸. 초반 1000원 쓸 때는 2800원을 벌지만, 계속 더 쓰다 보면 CPM이 올라가고 오디언스가 포화되고 CTR은 떨어진다. 그래서 3배를 유지하려면 예산을 줄여야 한다. 오히려. 근데 광고주는 안 본다. "성과 더 내세요"라는 말 뒤에는 항상 "예산은 지금대로"가 숨어있다. 어제 회의에서 미디어플래너 준호한테 확인했다. "준호, ROAS 2배 올리려면 예산 얼마나 줘야 해?" "대리님, 불가능하다고 했어요. ROI 그래프 보면 1억을 6월부터 4000만으로 줄여야 2배 다시 올라와요." "그럼 예산을 더 주면?" "그럼 ROAS는 1.5배까지 떨어진다고 했어요." 우리 에이전시 대표도 알고, 준호도 안다. 그런데 광고주 입장에선 "더 팔아야 하니까 광고도 더 돌려달라"가 되고, 그 광고를 더 돌리려면 예산이 많아야 하고, 그럼 자동으로 효율은 떨어진다. 악순환이다. 그런데도 나는 "검토하겠습니다"라고만 말했다. "그건 좀 어렵습니다"라고 못 했다. 왜? 광고주가 다음달에 예산을 4배로 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 ROAS는 또 내가 못한 탓이 되고, 담당자는 바뀌고, 모든 신뢰는 처음부터 다시 쌓아야 한다. 그래서 난 "검토"라고 했다. 검토라는 단어는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니까.숫자로 설득하려고 하는데 숫자가 자리를 안 잡아 회의 전에 자료를 만들었다. 1페이지: 지난 3개월 월별 ROAS 추이 (상승 그래프) 2페이지: 광고비 대비 실제 매출 기여도 (우리는 6500만원 광고비로 1억 8200만원 매출) 3페이지: 경쟁사 벤치마크 (업계 ROAS 평균 대비 우리 성과) 4페이지: 채널별 최적 예산 배분안 (5% 더 효율 낼 수 있는 시나리오) 숫자는 완벽했다. 그래프도 깔끔했다. 디자이너 혜진이가 예쁘게 만들었다. 그런데 광고주 담당자는 첫 장만 봤다. "ROAS 2.8배면 충분하지 않습니까?"라고 물었다. 내 대답은 준비되어 있었다. "현재 ROAS 수준을 유지하면서 추가 성장은 예산 증액이 필수입니다. 만약 예산을 유지하고 ROAS를 2배 올리려면..." 그 다음이 문제였다. 뭐라고 말해야 했다. "CPA 최적화와 오디언스 타게팅 고도화를 통해 시도해보겠습니다"? 이건 아무 의미 없는 말이다. 이미 3달 동안 다 해봤다. 오디언스는 더 이상 좁힐 수 없고, CPA는 이미 바닥이고, 크리에이티브도 4주마다 번갈아가며 테스트하고 있다. 그래서 난 말했다. "현실적으로는 어려울 거 같습니다만, 5% 정도는 개선 여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대신 리스크가 있습니다." 광고주: "무슨 리스크요?" "만약 실패하면 ROAS가 현재보다 낮아질 수 있습니다." 그 순간 광고주 표정이 굳었다. 결론은 다시 "검토하겠습니다"였다.매달 같은 질문을 받는 이유 이게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닐 거라는 게 문제다. 이 광고주 담당자는 작년에도 같은 얘기를 했다. "ROAS 올려달라"고. 그땐 예산을 10% 줬다. 그럼 ROAS는 당연히 떨어졌다. 광고비 6000만원에서 6600만원으로 늘어나면서 CPM은 올라가고, 오디언스는 이미 본 사람들이 계속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2.9배에서 2.6배가 되었다. 그럼 또 "ROAS 떨어졌다"고 한다. 그때 우린 채널 변경을 제안했다. 네이버에서 구글로. 그럼 ROAS는 3.2배가 되었다. 그런데 도달 수가 줄었다. 그럼 또 "도달을 늘려달라"고 한다. 그래서 또 예산을 넣었다. 6개월 전 이 시점에 예산이 6000만원이었는데 지금은 7500만원이다. 그리고 ROAS는 2.8배다. 25% 더 썼는데 ROAS는 -3.4% 떨어진 거다. 그런데도 자꾸만 "더 해달라"고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마케팅을 그래프처럼 생각하기 때문이다. 직선으로 올라가는 그래프. 근데 현실은 곡선이고, 어느 순간부터 수평선이 되고, 심하면 내려간다. 광고주는 그 곡선의 방정식을 모른다. 몰라도 된다. 근데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리고 설득해야 한다. 근데 설득이 안 된다. 왜냐면 광고주는 AE를 결국 "비용 센터"로 보기 때문이다. "우리 매출을 올려줘야 할 책임이 있는 부서"로. 그래서 항상 더 많은 결과를 요구한다. 예산 대비. 시간 대비. 내 동기 준은 작년에 같은 이유로 번아웃 왔다. 광고주가 자꾸만 달라는 대로 하다 보니, 팀원들도 내내 야근하게 되고, 결과는 나오지 않고, 자존감이 떨어졌대. 지금 다른 회사로 옮겼다. 인하우스 마케팅팀으로. [IMAGE_4] 그럼 뭘 해야 하나 금요일 오후 3시. 이 광고주 담당자한테 전화를 걸었다. "ROAS 2배에 대해서 말인데요,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가 있어요. 5% 정도. 그런데 그것도 리스크가 있고요. 혹은 예산을 증액해주시면 현재 ROAS 수준을 유지하면서 더 많은 매출을 만들 수 있어요." 광고주: "그게 무슨 뜻인가요?" "지금 6500만원으로 1억 8200만원 매출을 만들고 있는데, 예를 들어 7500만원으로 가면 2억 2000만원 정도 매출을 만들 수 있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ROAS는 2.7배 정도 될 거고요." "...더 많은 매출이 목표니까 그게 맞는데, 위에선 효율을 원하셔요." "그게 문제예요. 매출을 원하면 예산을 주셔야 하고, 효율을 원하면 매출을 약간 포기해야 해요. 동시에 둘 다 하기는 불가능합니다." 침묵이 있었다. 그 침묵이 5초쯤 됐을 때 광고주가 말했다. "상사분하고 얘기해보고 연락드릴게요." "좋습니다." 끊었다. 이제 며칠을 기다려야 한다. 광고주 상사가 뭐라고 할지. 예산을 더 줄지 현 수준에서 ROAS 5% 개선을 받아들일지. 아니면 다른 에이전시로 바꿀지. 에이전시 하는 입장에선 항상 이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간다. 근데 하나 느낀 게 있다. 이번엔 좀 다른 것 같았다. "더 해주세요" 대신 "우리가 뭘 원하는지 확실히 하세요"라는 답변이 나왔기 때문이다. 혹은 내가 처음으로 명확하게 "그건 불가능하다"고 말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IMAGE_5] 매달 고민, 매달 현실 이제 거의 야근 시간이다. 8시가 되려고 한다. 리포트를 마무리하면서 생각했다. 이게 반복되는 건 왜일까. 광고주도 나쁜 사람이 아니다. 그냥 위에서 시킨 일을 해야 한다. 나도 나쁜 사람이 아니다. 그냥 광고주가 시킨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 사이에서 계속 "더 해달라", "조금 더", "내일까지"가 반복된다. 에이전시 5년 차인 지금, 이직을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가 이거다. 불가능한 요청을 계속 받고, 그걸 "검토하겠습니다"로 받아주고, 최선을 다한 뒤에도 "부족합니다"라는 말을 듣는 반복. 근데 인하우스로 가도 마찬가지일 거다. 위에서 계속 "더"를 외칠 테니까. 그래서 다음달에도 같은 광고주 담당자로부터 같은 메일을 받을 것 같다. "다음달 ROAS 목표 조정..." 그리고 난 또 "검토하겠습니다"라고 할 거고.예산 없이 성과를 원하는 건 마케팅이 아니라 기적을 바라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