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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인
- 09 Dec, 2025
야근이 기본인 에이전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야근이 기본인 에이전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오늘도 8시 반 퇴근했다. 8시 반. '일찍 나간다'는 팀장 말에 웃었다. 9시 반 출근해서 8시 반 퇴근이 일찍이래. 지하철은 한산하다. 출근할 때 봤던 사람들은 이미 집에 있겠지. 나는 아직도 머릿속에 광고주 피드백이 맴돈다. "ROAS가 왜 이래요?" "예산 더 집행할 수 있어요?" "경쟁사는 성과 더 좋던데요."퇴근길 지하철에서도 슬랙을 확인한다. 광고주가 메시지를 보냈다. '내일 오전 미팅 가능하세요?' 가능하냐고. 불가능하다고 해본 적이 없다. 야근이 기본이 된 날들 입사했을 때만 해도 6시 퇴근할 줄 알았다. 첫 달은 7시에 나갔다. '신입이라 일이 적네' 생각했다. 두 번째 달부터 달라졌다. 광고주 2개를 맡았다. 리포트 작성하다 보면 8시. 세 번째 광고주 맡고부터는 9시가 기본. 캠페인 라이브하는 날은 11시 넘어. 새벽까지 모니터링한 날도 여러 번.5년 차가 되니까 이게 익숙해졌다. 익숙해진 게 더 무섭다. '오늘 7시에 나가네?' 이런 말이 칭찬처럼 들린다. 정규 퇴근 시간이 6시인데. 캠페인 시즌의 지옥 블프 시즌이 제일 힘들다. 11월 한 달은 그냥 회사에 산다고 봐야 한다. 광고주 3개 모두 블프 특수 노린다. 예산은 평소의 3배. 타겟 ROAS는 그대로. 말이 되냐고. 되냐고 물으면 안 된다. '할 수 있습니다' 해야 한다. 11월 첫째 주부터 야근. 둘째 주는 새벽 2시 퇴근. 셋째 주는 아예 사무실에서 잤다. 씻으러 집 갔다 오는 정도.디자이너는 울었다. 소재 50개 수정 요청에. 나도 울고 싶었다. 미디어플래너는 "못 하겠다"고 했다. 광고 세팅 200개 넘어가서. 나도 못 하겠다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AE는 그럴 수 없다. 광고주한테는 '됩니다' 해야 하고. 팀원들한테는 '할 수 있어요' 해야 하고. 블프 끝나고 몸무게 4kg 빠졌다. 먹을 시간이 없었다. 커피로 버텼다. 성과가 안 나오면 다 AE 탓 제일 억울한 건 이거다. 성과 좋으면 광고주가 잘한 거. 성과 안 좋으면 AE가 못한 거. 지난주 한 광고주. ROAS 320% 나왔다. 타겟이 300%였는데. 보고했더니 "그럼 예산 더 집행해 보죠" 했다. 예산 2배로 늘렸다. ROAS는 280%로 떨어졌다. 당연하다. 예산 늘리면 효율 떨어지는 거 마케팅 기본 아닌가. 근데 광고주는 이해 못 한다. "왜 떨어졌어요?" "전에는 잘 나왔잖아요." "뭐가 문제예요?" 설명했다. 예산 규모가 커지면 타겟 풀이 넓어지고. 넓어지면 당연히 효율은 떨어진다고. "그럼 효율 유지하면서 예산 집행해 주세요."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걸 요구한다. 근데 '불가능합니다'는 절대 말 못 한다.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해야 한다. 다음 주 리포트에서도 ROAS 280%. "개선 방안이 뭐예요?" 방안이 뭐냐고. 예산 줄이는 게 방안이다. 근데 그건 말 못 한다. 번아웃 전단계 요즘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다. 알람 5개 맞춰놔도 못 일어난다. 출근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그냥 몸이 안 움직인다. 회사 가면 괜찮아진다. 일하면 괜찮다. 바쁘면 생각할 틈이 없어서. 근데 집에 오면 무너진다. 씻을 힘도 없다. 침대에 쓰러진다. 핸드폰 보다가 잠든다. 주말. 토요일은 그냥 잔다. 일어나서 밥 먹고 다시 잔다. 일요일 오후 돼야 정신 차린다. 일요일 저녁. 월요일 생각하면 숨이 막힌다. '또 시작이네.' 이 생각 반복. 남자친구가 걱정한다. "너 요즘 이상해." "번아웃 아니야?" 아니라고 했다. 번아웃은 아직 아니라고. 일은 할 수 있으니까. 근데 거짓말인 것 같다. 이미 번아웃 시작된 것 같다. 인정하기 싫을 뿐. 에이전시 5년의 의미 동기들이 하나둘 나간다. 어떤 애는 인하우스로. 어떤 애는 프리랜서로. 어떤 애는 아예 업종을 바꿨다. "에이전시 5년이면 됐어." 다들 그렇게 말한다. 나도 5년 차다. 이직을 생각한다. 근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인하우스? 친구가 말했다. "생각보다 돈 많이 안 줘." "업무는 더 루틴해." 프리랜서? 불안정하다. 광고주 섭외를 내가 해야 한다. 자신 없다. 다른 업종? 30살에 신입으로 시작? 그것도 무섭다. 그럼 에이전시 계속? 팀장 보면 답 나온다. 10년 차 팀장도 야근한다. ROAS 스트레스 똑같이 받는다. 나도 저렇게 될 거다. 5년 더 있으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솔직히 모르겠다. 1년 더? 가능할 것 같다. 2년 더? 자신 없다. 몸이 말을 안 듣는다. 작년까지만 해도. 야근해도 다음 날 괜찮았다. 새벽까지 일해도 회복됐다. 올해는 다르다. 야근 다음 날 출근이 고역이다. 주말에 쉬어도 회복 안 된다. 계속 피곤하다. 정신도 문제다. 광고 대시보드 보는 게 무섭다. 'ROAS 떨어졌으면 어떡하지.' 'CPA 올랐으면 어떡하지.' 새벽에 깬다. 광고 꿈을 꾼다. 광고주가 "성과가 왜 이래요" 하는 꿈. 식은땀 흘리며 깬다. 이러면 안 되는 거 안다. 근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퇴사? 다음 직장 없이 퇴사는 무리다. 집세는 내야 하니까. 이직? 이력서 쓸 시간도 없다. 면접 보러 갈 시간도 없다. 휴가? 휴가 써도 광고주는 기다려주지 않는다. 캠페인은 계속 돌아간다. 그래도 버티는 이유 왜 버티냐고 물으면. 답은 간단하다. 돈. 월급 들어오는 게 확실하다. 성과 내면 보너스도 나온다. 이게 제일 크다. 경력. 5년 차 AE 경력은 어디서나 인정받는다. 퍼포먼스 마케팅 실무 경험. 이건 자산이다. 성취감. 성과 좋을 때. ROAS 목표 달성했을 때. 그때는 좋다. '내가 해냈네' 하는 순간. 그 순간들이 나를 버티게 한다. 근데 그 순간이 점점 줄어든다. 스트레스가 성취감을 압도한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모르겠다. 내일도 출근한다. 그게 답인 것 같다. 버틸 수 있을 때까지 버틴다. 무너지기 전까지.오늘 퇴근 8시. 내일 광고주 미팅 2개. 버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