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 대비 효율이요' - 내가 제일 많이 말하는 문장
- 03 Dec, 2025
‘예산 대비 효율이요’ - 내가 제일 많이 말하는 문장
오전 10시, 광고주 미팅
“이번 캠페인 성과 어때요?”
광고주 마케팅팀장이 묻는다. 나는 노트북 화면을 돌린다.
“예산 대비 효율이요, 지난달보다 15% 올랐습니다.”
이 문장. 일주일에 스무 번은 말한다.
광고주 미팅, 내부 보고, 디자이너 설득, 미디어플래너 조율. 모든 대화가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5년차 되니까 자동으로 나온다. 생각 안 해도.

광고주는 숫자를 원한다. “좋았어요”, “반응 괜찮았어요” 이런 말은 안 먹힌다.
“ROAS 350%입니다. CPA는 8500원으로 떨어졌고요.”
구체적 숫자. 비교 데이터. 지난달 대비, 전년 동기 대비, 목표 대비.
이게 내 언어다. 5년 전엔 이렇게 말 못 했다.
신입 때는 “성과 좋았어요!” 이랬다가 혼났다. 선배가 말했다.
“얼마나 좋았는데? 숫자로 말해.”
그때부터 배웠다. 느낌이 아니라 숫자로.
점심시간, 동기와
동기 지원이가 묻는다.
“너 요즘 광고주 어때?”
“예산 대비 효율이 좋아서 다행이야.”
지원이가 웃는다.
“너 그 말 입에 붙었다.”
맞다. 붙었다.
집에서도 나온다. 남자친구랑 저녁 메뉴 정할 때도.
“이 식당 가성비 좋아. 예산 대비 효율적이야.”
남자친구가 한숨 쉰다. “너 직업병이야.”

근데 이게 우리 삶이다. 에이전시 AE는.
모든 게 효율로 환산된다. 시간, 돈, 노력, 결과.
“이 디자인 작업에 3시간 들었는데 성과가 저거면 예산 대비 효율이 안 나와.”
“이 매체는 CPM이 높아서 예산 대비 효율이 떨어져.”
“야근 2시간 했는데 ROAS가 이 정도면 예산 대비… 아니 시간 대비 효율이 좋네.”
심지어 야근도 효율로 계산한다. 병이다.
오후 3시, 내부 기획 회의
디자이너 수진 씨가 새 크리에이티브 시안을 보여준다.
예쁘다. 진짜 예쁘다.
근데 내 머릿속엔 숫자가 먼저 떠오른다.
“이 작업 시간이 얼마나 걸렸어요?”
“이틀이요.”
“이틀이면… 예산 대비 효율을 생각하면…”
수진 씨가 한숨 쉰다.
“민지 씨, 또 그 말이에요.”
미안하다. 근데 어쩔 수 없다.

광고주는 예쁜 거에 돈 안 낸다. 성과에 낸다.
ROAS 300% 나오면 못생겨도 만족한다. ROAS 150%면 아무리 예뻐도 불만이다.
이게 퍼포먼스 마케팅이다.
브랜딩이랑 다르다. 브랜딩은 감성으로 말할 수 있다. “이미지가 좋아졌어요”, “인지도가 올랐어요.”
근데 퍼포먼스는 숫자다. CPA, ROAS, CVR, CTR.
알파벳 네 글자로 모든 게 결정된다.
그래서 나는 맨날 “예산 대비 효율이요” 라고 말한다.
이게 내 방패다. 이게 내 설득의 시작이다.
오후 5시, 광고주 전화
광고주 담당자가 전화한다.
“민지 씨, 이번 달 예산 500만원 더 쓰고 싶은데요.”
심장이 뛴다. 좋은 신호다.
“좋습니다. 근데 예산 대비 효율을 유지하려면 타겟을 좀 더 좁혀야 할 것 같아요.”
“왜요?”
“지금 ROAS가 320%인데, 예산을 늘리면 효율이 떨어질 수 있거든요. 타겟 정교화하면 350%까지도 가능합니다.”
침묵.
3초.
“알겠어요. 그럼 그렇게 해주세요.”
끊고 나서 안도한다.
이 한 마디가 500만원을 지켰다. “예산 대비 효율이요.”
만약 내가 “네 알겠습니다” 하고 그냥 예산 늘렸으면?
한 달 뒤에 ROAS 250%로 떨어지고, 광고주는 화낸다.
“왜 효율이 떨어졌어요?”
그럼 나는 변명해야 한다.
차라리 처음부터 말하는 게 낫다. “예산 대비 효율” 얘기를.
저녁 7시, 리포트 작성
주간 리포트를 쓴다.
첫 문장은 항상 똑같다.
“이번 주 예산 대비 효율은 지난주 대비 8% 상승했습니다.”
이 문장 쓰는 데 5분 걸린다.
숫자 확인하고, 비교하고, 계산하고.
근데 광고주는 이 문장만 본다. 나머지는 안 봐도 된다.
“예산 대비 효율” 이 좋으면 만족. 나쁘면 불만.
그래서 나는 이 문장에 목숨 건다.
ROAS 계산 세 번 확인한다. CPA 엑셀로 두 번 검산한다.
틀리면 안 된다. 이 숫자 하나가 내 신뢰도다.
5년차인데도 매번 떨린다. 리포트 보낼 때.
“예산 대비 효율이 좋기를…” 기도하면서 전송 버튼 누른다.
밤 10시, 퇴근길
지하철에서 광고를 본다. 경쟁사 캠페인이다.
자동으로 분석한다.
“저 소재로 ROAS가 얼마나 나올까?”
“저 타겟팅이면 CPA가 1만원은 넘겠네.”
“예산이 얼마나 들었을까? 저 매체 집행비는…”
직업병이다. 완전히.
광고 보면서 쉬질 못한다. 효율을 계산한다.
남자친구가 옆에서 말한다.
“너 또 일 생각하지?”
“아니야.”
거짓말이다. 생각하고 있었다.
“예산 대비 효율이 저 정도면 광고주가 만족했을까?”
집에 와서도 생각한다.
내일 광고주 미팅에서 뭐라고 말하지?
“예산 대비 효율이요…” 로 시작해야지.
이 문장이면 설득할 수 있다. 항상 그랬으니까.
주말 오후, 카페에서
친구들 만났다. 대학 동기들.
한 친구가 말한다.
“나 이번에 옷 샀는데 50만원이야.”
다른 친구가 놀란다.
“비싸다!”
나는 자동으로 묻는다.
“그 옷 몇 번 입을 건데? 예산 대비 효율이…”
친구들이 웃는다.
“민지야, 너 진짜 직업병이다.”
맞다. 인정한다.
모든 걸 효율로 계산한다. 옷, 밥, 카페, 심지어 친구 만나는 시간도.
“2시간 만나는데 왕복 1시간 반 걸리면… 시간 대비 효율이…”
이러니까 친구들이 싫어한다.
“너 좀 쉬어. 맨날 효율 타령.”
쉬고 싶다. 근데 안 된다.
5년 동안 훈련된 습관이다. 뇌가 자동으로 계산한다.
일요일 밤, 침대에서
내일 월요일이다. 출근이다.
광고주 미팅이 두 개 있다.
머릿속으로 리허설한다.
“예산 대비 효율이요, 지난주보다 12% 올랐습니다.”
“추가 예산 집행하시면 예산 대비 효율을 유지하면서…”
“이 소재가 예산 대비 효율이 제일 좋았습니다.”
모든 문장이 이 단어로 시작한다.
5년 동안 몇 번 말했을까?
하루에 20번. 일주일에 100번. 한 달에 400번.
5년이면… 24000번?
24000번 말했다. “예산 대비 효율이요.”
이제 이 말 없이는 설득을 못 한다.
광고주도, 동료도, 상사도.
심지어 남자친구한테도 이 말 쓴다.
“우리 이번 주말 제주도 가자.”
“비행기값이 얼마인데? 예산 대비 효율이…”
남자친구가 한숨 쉰다.
“민지야, 여행은 효율로 재는 게 아니야.”
맞는 말이다.
근데 나는 못 고친다. 이게 내 언어니까.
이 말의 무게
“예산 대비 효율이요.”
겉으로는 단순해 보인다. 숫자 몇 개 말하는 거.
근데 이 한 마디에 내 5년이 들어있다.
밤새 돌린 캠페인. 새벽에 확인한 대시보드. 광고주 설득하려고 준비한 데이터.
“예산 대비 효율” 하나로 모든 걸 증명해야 한다.
내 기획이, 내 실행이, 내 고민이 옳았다는 걸.
그래서 이 말은 무겁다.
가볍게 던지는 것처럼 보여도, 뒤에는 야근과 스트레스가 있다.
ROAS 1% 올리려고 매체를 열 번 바꿔본다.
CPA 100원 줄이려고 타겟을 스무 번 수정한다.
“예산 대비 효율” 을 지키려고.
광고주는 모른다. 이 숫자 뒤에 뭐가 있는지.
그냥 “ROAS 좋네요” 하고 만족한다.
나는 “네, 감사합니다” 하고 웃는다.
속으로는 안도한다. ‘이번 주도 넘겼다.‘
그래도 계속 말한다
내일도 말할 거다.
“예산 대비 효율이요.”
모레도, 다음 주도, 내년에도.
이게 내 일이니까.
숫자로 증명하는 일.
효율로 설득하는 일.
가끔 지친다. 모든 걸 효율로 재는 게.
사람 만나도, 밥 먹어도, 쉬는 것도 효율 계산한다.
‘이 시간이 예산 대비… 아니 시간 대비 가치가 있나?’
병이다. 알고 있다.
근데 이게 내 무기이기도 하다.
“예산 대비 효율이요” 한 마디면 광고주가 끄덕인다.
이 말이면 상사가 승인한다.
이 말이면 내 기획이 통과된다.
그래서 계속 말한다.
입에 붙도록, 자동으로 나오도록.
이게 나의 언어다.
에이전시 AE, 민지의 언어.
오늘도 말했다. 열다섯 번쯤. 내일은 스무 번 말하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