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ing Posts From

대비

'예산 대비 효율이요' - 내가 제일 많이 말하는 문장

'예산 대비 효율이요' - 내가 제일 많이 말하는 문장

'예산 대비 효율이요' - 내가 제일 많이 말하는 문장 오전 10시, 광고주 미팅 "이번 캠페인 성과 어때요?" 광고주 마케팅팀장이 묻는다. 나는 노트북 화면을 돌린다. "예산 대비 효율이요, 지난달보다 15% 올랐습니다." 이 문장. 일주일에 스무 번은 말한다. 광고주 미팅, 내부 보고, 디자이너 설득, 미디어플래너 조율. 모든 대화가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5년차 되니까 자동으로 나온다. 생각 안 해도.광고주는 숫자를 원한다. "좋았어요", "반응 괜찮았어요" 이런 말은 안 먹힌다. "ROAS 350%입니다. CPA는 8500원으로 떨어졌고요." 구체적 숫자. 비교 데이터. 지난달 대비, 전년 동기 대비, 목표 대비. 이게 내 언어다. 5년 전엔 이렇게 말 못 했다. 신입 때는 "성과 좋았어요!" 이랬다가 혼났다. 선배가 말했다. "얼마나 좋았는데? 숫자로 말해." 그때부터 배웠다. 느낌이 아니라 숫자로. 점심시간, 동기와 동기 지원이가 묻는다. "너 요즘 광고주 어때?" "예산 대비 효율이 좋아서 다행이야." 지원이가 웃는다. "너 그 말 입에 붙었다." 맞다. 붙었다. 집에서도 나온다. 남자친구랑 저녁 메뉴 정할 때도. "이 식당 가성비 좋아. 예산 대비 효율적이야." 남자친구가 한숨 쉰다. "너 직업병이야."근데 이게 우리 삶이다. 에이전시 AE는. 모든 게 효율로 환산된다. 시간, 돈, 노력, 결과. "이 디자인 작업에 3시간 들었는데 성과가 저거면 예산 대비 효율이 안 나와." "이 매체는 CPM이 높아서 예산 대비 효율이 떨어져." "야근 2시간 했는데 ROAS가 이 정도면 예산 대비... 아니 시간 대비 효율이 좋네." 심지어 야근도 효율로 계산한다. 병이다. 오후 3시, 내부 기획 회의 디자이너 수진 씨가 새 크리에이티브 시안을 보여준다. 예쁘다. 진짜 예쁘다. 근데 내 머릿속엔 숫자가 먼저 떠오른다. "이 작업 시간이 얼마나 걸렸어요?" "이틀이요." "이틀이면... 예산 대비 효율을 생각하면..." 수진 씨가 한숨 쉰다. "민지 씨, 또 그 말이에요." 미안하다. 근데 어쩔 수 없다.광고주는 예쁜 거에 돈 안 낸다. 성과에 낸다. ROAS 300% 나오면 못생겨도 만족한다. ROAS 150%면 아무리 예뻐도 불만이다. 이게 퍼포먼스 마케팅이다. 브랜딩이랑 다르다. 브랜딩은 감성으로 말할 수 있다. "이미지가 좋아졌어요", "인지도가 올랐어요." 근데 퍼포먼스는 숫자다. CPA, ROAS, CVR, CTR. 알파벳 네 글자로 모든 게 결정된다. 그래서 나는 맨날 "예산 대비 효율이요" 라고 말한다. 이게 내 방패다. 이게 내 설득의 시작이다. 오후 5시, 광고주 전화 광고주 담당자가 전화한다. "민지 씨, 이번 달 예산 500만원 더 쓰고 싶은데요." 심장이 뛴다. 좋은 신호다. "좋습니다. 근데 예산 대비 효율을 유지하려면 타겟을 좀 더 좁혀야 할 것 같아요." "왜요?" "지금 ROAS가 320%인데, 예산을 늘리면 효율이 떨어질 수 있거든요. 타겟 정교화하면 350%까지도 가능합니다." 침묵. 3초. "알겠어요. 그럼 그렇게 해주세요." 끊고 나서 안도한다. 이 한 마디가 500만원을 지켰다. "예산 대비 효율이요." 만약 내가 "네 알겠습니다" 하고 그냥 예산 늘렸으면? 한 달 뒤에 ROAS 250%로 떨어지고, 광고주는 화낸다. "왜 효율이 떨어졌어요?" 그럼 나는 변명해야 한다. 차라리 처음부터 말하는 게 낫다. "예산 대비 효율" 얘기를. 저녁 7시, 리포트 작성 주간 리포트를 쓴다. 첫 문장은 항상 똑같다. "이번 주 예산 대비 효율은 지난주 대비 8% 상승했습니다." 이 문장 쓰는 데 5분 걸린다. 숫자 확인하고, 비교하고, 계산하고. 근데 광고주는 이 문장만 본다. 나머지는 안 봐도 된다. "예산 대비 효율" 이 좋으면 만족. 나쁘면 불만. 그래서 나는 이 문장에 목숨 건다. ROAS 계산 세 번 확인한다. CPA 엑셀로 두 번 검산한다. 틀리면 안 된다. 이 숫자 하나가 내 신뢰도다. 5년차인데도 매번 떨린다. 리포트 보낼 때. "예산 대비 효율이 좋기를..." 기도하면서 전송 버튼 누른다. 밤 10시, 퇴근길 지하철에서 광고를 본다. 경쟁사 캠페인이다. 자동으로 분석한다. "저 소재로 ROAS가 얼마나 나올까?" "저 타겟팅이면 CPA가 1만원은 넘겠네." "예산이 얼마나 들었을까? 저 매체 집행비는..." 직업병이다. 완전히. 광고 보면서 쉬질 못한다. 효율을 계산한다. 남자친구가 옆에서 말한다. "너 또 일 생각하지?" "아니야." 거짓말이다. 생각하고 있었다. "예산 대비 효율이 저 정도면 광고주가 만족했을까?" 집에 와서도 생각한다. 내일 광고주 미팅에서 뭐라고 말하지? "예산 대비 효율이요..." 로 시작해야지. 이 문장이면 설득할 수 있다. 항상 그랬으니까. 주말 오후, 카페에서 친구들 만났다. 대학 동기들. 한 친구가 말한다. "나 이번에 옷 샀는데 50만원이야." 다른 친구가 놀란다. "비싸다!" 나는 자동으로 묻는다. "그 옷 몇 번 입을 건데? 예산 대비 효율이..." 친구들이 웃는다. "민지야, 너 진짜 직업병이다." 맞다. 인정한다. 모든 걸 효율로 계산한다. 옷, 밥, 카페, 심지어 친구 만나는 시간도. "2시간 만나는데 왕복 1시간 반 걸리면... 시간 대비 효율이..." 이러니까 친구들이 싫어한다. "너 좀 쉬어. 맨날 효율 타령." 쉬고 싶다. 근데 안 된다. 5년 동안 훈련된 습관이다. 뇌가 자동으로 계산한다. 일요일 밤, 침대에서 내일 월요일이다. 출근이다. 광고주 미팅이 두 개 있다. 머릿속으로 리허설한다. "예산 대비 효율이요, 지난주보다 12% 올랐습니다." "추가 예산 집행하시면 예산 대비 효율을 유지하면서..." "이 소재가 예산 대비 효율이 제일 좋았습니다." 모든 문장이 이 단어로 시작한다. 5년 동안 몇 번 말했을까? 하루에 20번. 일주일에 100번. 한 달에 400번. 5년이면... 24000번? 24000번 말했다. "예산 대비 효율이요." 이제 이 말 없이는 설득을 못 한다. 광고주도, 동료도, 상사도. 심지어 남자친구한테도 이 말 쓴다. "우리 이번 주말 제주도 가자." "비행기값이 얼마인데? 예산 대비 효율이..." 남자친구가 한숨 쉰다. "민지야, 여행은 효율로 재는 게 아니야." 맞는 말이다. 근데 나는 못 고친다. 이게 내 언어니까. 이 말의 무게 "예산 대비 효율이요." 겉으로는 단순해 보인다. 숫자 몇 개 말하는 거. 근데 이 한 마디에 내 5년이 들어있다. 밤새 돌린 캠페인. 새벽에 확인한 대시보드. 광고주 설득하려고 준비한 데이터. "예산 대비 효율" 하나로 모든 걸 증명해야 한다. 내 기획이, 내 실행이, 내 고민이 옳았다는 걸. 그래서 이 말은 무겁다. 가볍게 던지는 것처럼 보여도, 뒤에는 야근과 스트레스가 있다. ROAS 1% 올리려고 매체를 열 번 바꿔본다. CPA 100원 줄이려고 타겟을 스무 번 수정한다. "예산 대비 효율" 을 지키려고. 광고주는 모른다. 이 숫자 뒤에 뭐가 있는지. 그냥 "ROAS 좋네요" 하고 만족한다. 나는 "네, 감사합니다" 하고 웃는다. 속으로는 안도한다. '이번 주도 넘겼다.' 그래도 계속 말한다 내일도 말할 거다. "예산 대비 효율이요." 모레도, 다음 주도, 내년에도. 이게 내 일이니까. 숫자로 증명하는 일. 효율로 설득하는 일. 가끔 지친다. 모든 걸 효율로 재는 게. 사람 만나도, 밥 먹어도, 쉬는 것도 효율 계산한다. '이 시간이 예산 대비... 아니 시간 대비 가치가 있나?' 병이다. 알고 있다. 근데 이게 내 무기이기도 하다. "예산 대비 효율이요" 한 마디면 광고주가 끄덕인다. 이 말이면 상사가 승인한다. 이 말이면 내 기획이 통과된다. 그래서 계속 말한다. 입에 붙도록, 자동으로 나오도록. 이게 나의 언어다. 에이전시 AE, 민지의 언어.오늘도 말했다. 열다섯 번쯤. 내일은 스무 번 말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