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3 Dec, 2025
캠페인 라이브 D-Day, 새벽 3시 대시보드 앞에서 깨달은 것
오후 11시 30분, 캠페인 라이브 "내일 새벽 0시 정각 라이브입니다." 광고주한테 문자 보냈다. 1억 예산 캠페인. 패션 브랜드 시즌오프 세일. 목표 ROAS 600%. 3일간 집행. 대시보드 세팅 끝. 미디어 5개. 네이버SA, 카카오모먼트, 메타, 구글 디스플레이, 크리테오. 소재 87개. 타겟 32개. "테스트 다 돌려봤죠?" 팀장이 물었다. "네, 어제 10만원씩 돌렸습니다. CPA 12,000원 나왔어요." "좋네. 오늘 밤샐 거지?" "당연하죠." 라이브 날은 무조건 야근이다. 아니, 철야다.새벽 0시 10분, 시작 F5 눌렀다. 새로고침. 노출수 127. 클릭 3. 전환 0. "아직 초반이야." 혼잣말했다. 커피 마셨다. 네 번째. 0시 20분. 노출 2,450. 클릭 48. 전환 1. CPA 180,000원. "뭐야..." 목표는 15,000원이다. 0시 35분. 전환 3개. 평균 CPA 160,000원. 손이 떨렸다. "아직 초반이라 그래. 데이터 쌓이면 최적화돼." 혼자 중얼거렸다. 메타 대시보드 켰다. CPC 4,500원. CTR 0.8%. "CPC가 왜 이래?" 어제 테스트 때는 1,200원이었다. 네이버 대시보드. 클릭당 단가 3,800원. 전환율 0.2%. "미쳤나..."새벽 1시, 공황 전환 8개. 소진 예산 1,340만원. CPA 167,500원. 계산기 두드렸다. "이 페이스면 3일 동안 전환 72개. 1억 쓰면 CPA 138만원." 목표는 1,500개였다. 심장이 빨라졌다. 슬랙 켰다. 팀장한테 메시지. "팀장님, 성과 안 나오는데요. CPA가 10배 넘게 나와요." 1분 뒤 답장. "뭐가 문제야?" "모르겠어요. 어제 테스트 때는 괜찮았는데." "소재 바꿔봐. 타겟 좁혀봐." "지금요?" "응. 일단 예산 50% 줄여. 1시간 지켜보고." 예산 조정했다. 시간당 500만원에서 250만원으로. 소재 30개 중 CTR 낮은 거 15개 중지. 타겟 32개 중 CPA 높은 거 18개 끔. "제발..."새벽 2시, 광고주 전화 전환 12개. 예산 1,780만원. CPA 148,000원. 조금 나아졌다. 아니, 착각이다. 광고주 전화 왔다. "아, 네 대리님." "대시보드 보고 있는데요. 성과가..." 가슴이 철렁했다. "네, 지금 최적화 중입니다. 초반이라 학습 단계여서..." "CPA가 15배인데 학습이요?" "죄송합니다. 지금 소재랑 타겟 계속 조정하고 있어요." "1억 예산인데 이러면 안 되잖아요." "알고 있습니다. 새벽 내내 모니터링하면서 개선하겠습니다." "내일 오전 9시에 보고 주세요." "네..." 전화 끊었다. 손이 떨렸다. 커피 쏟았다. "망했다." 새벽 2시 30분, 원인 분석 정신 차려야 했다. 공황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안 된다. 5년 차가 이래서야. 노트 펼쳤다. 분석 시작. 가설 1: 경쟁 입찰가 상승 → 세일 시즌이라 모든 패션 브랜드가 광고비 늘렸다. → CPC 3배 상승. 어제 테스트 때 vs 오늘 라이브. 가설 2: 타겟 오버랩 → 타겟 32개가 서로 경쟁해서 내부 입찰가 올렸다. → 같은 사람한테 여러 소재 보여서 피로도 높아짐. 가설 3: 랜딩페이지 문제 → 트래픽 몰려서 로딩 속도 느려졌나? → 체크해봤다. 2.3초. 괜찮다. 가설 4: 어제 테스트 표본 오류 → 10만원씩 돌린 거로 1억 예측한 게 문제. → 표본 수 너무 적었다. "4번이다." 어제 전환 8개로 "이 정도면 되겠다" 판단했다. 멍청했다. 새벽 3시, 전략 수정 냉정하게 다시 봤다. 지금 상황:전환 18개 소진 2,100만원 CPA 116,000원 ROAS 52%목표:CPA 15,000원 ROAS 600%격차가 8배다. "8배 개선은 불가능하다." 현실적으로 생각했다. Plan A: 미디어 집중5개 미디어 중 네이버SA만 남기고 다 끈다. 네이버가 CPA 80,000원으로 제일 낮다. 예산 100% 네이버에 몰빵.Plan B: 소재 단순화87개 소재 → 10개로. 어제 테스트에서 CTR 2% 넘은 것만. A/B 테스트 포기. 집중.Plan C: 타겟 최소화32개 타겟 → 5개로. 구매 경험 있는 기존 고객만. 신규 고객 타겟 포기."이러면 볼륨 안 나온다." 알고 있다. 근데 지금은 효율이 우선이다. 광고주한테 문자 보냈다. "대리님, 성과 개선 위해 전략 수정합니다. 볼륨은 줄지만 효율 올리겠습니다. 새벽 작업 후 아침 보고 드릴게요." 답장 없었다. 자는 중이겠지. 새벽 3시 40분, 실행 Plan A, B, C 실행했다. 메타, 구글, 카카오, 크리테오 전부 일시중지. 네이버SA만 남겼다. 소재 87개 → 베스트 10개. 타겟 32개 → 5개. 예산 전부 네이버로. "이제 지켜본다." F5. 새로고침. 3시 50분. CPC 2,800원. 어제보다 여전히 높지만 아까보단 낮다. 4시. 전환 1개 들어왔다. CPA 78,000원. 4시 10분. 전환 또 1개. CPA 68,000원. "내려가고 있어." 4시 30분. 전환 4개. 평균 CPA 62,000원. 숨 쉴 수 있었다. 새벽 5시, 깨달음 전환 28개. 소진 2,640만원. CPA 94,000원. 아직 목표의 6배지만, 3시간 전 167,000원보다는 낫다. 창밖이 밝아졌다. 책상에 엎드렸다. "5년 차가 뭐냐." 이번에 배운 것: 1. 테스트 예산은 최소 100만원 이상 10만원으로 뭘 알겠냐. 착각이었다. 2. 라이브 전날은 경쟁 입찰가 체크 세일 시즌이면 당연히 CPC 오른다. 예측했어야 했다. 3. 타겟 많으면 내부 경쟁 32개는 과했다. 서로 싸워서 입찰가만 올린다. 4. 공황 상태에서는 판단 못해 2시에 멘붕 왔을 때 30분 낭비했다. 분석부터 했어야. 5. 광고주한테 먼저 말하기 성과 안 나오면 솔직하게 빨리 말하는 게 낫다. 새벽 3시에 문자 보낸 건 잘했다. 6. 볼륨과 효율은 트레이드오프 둘 다 잡으려다 둘 다 놓친다. 핸드폰 진동. 광고주. "수고하셨어요. 방향 맞는 것 같아요. 오전 보고 때 자세히 들을게요." 눈물 날 뻔했다. 오전 9시, 보고 3시간 쪽잠 자고 출근했다. 광고주 화상 미팅. "밤새 수고 많으셨어요." "죄송합니다. 초반 세팅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현황 보고했다.1일차 새벽 0시~오전 8시 전환 45개 소진 3,200만원 CPA 71,000원 ROAS 140%"목표 대비 아직 멀지만, 3시 이후로 개선 추세입니다." 그래프 보여줬다. 시간대별 CPA. 0시: 180,000원 1시: 160,000원 2시: 148,000원 3시: 116,000원 4시: 68,000원 5시: 52,000원 6시: 48,000원 7시: 45,000원 8시: 41,000원 "전략 수정 후 계속 하락 중입니다." 광고주가 물었다. "목표 15,000원까지 갈 수 있을까요?" "솔직히 어렵습니다. 현재 시장 입찰가로는 30,000원 전후가 현실적입니다." "그럼 ROAS는?" "300% 정도 예상합니다." "목표가 600%인데." "네. 죄송합니다. 하지만 지금 시즌에 모든 브랜드가 광고비 쓰고 있어서, 목표 유지하려면 예산을 2배 늘리거나 기간을 늘려야 합니다." 광고주가 한숨 쉬었다. "알겠습니다. 일단 이대로 진행하고, 내일 다시 보죠." "감사합니다." 미팅 끝. 오후 2시, 뒷정리 책상 정리했다. 커피 컵 7개. 휴지 뭉치 12개. 포스트잇 47장. 슬랙에 팀장한테 메시지. "정리했습니다. CPA 4만원대 안정화됐어요." "수고했어. 일찍 가." "오늘 7시에 퇴근할게요." "6시에 가라니까." "네..." 동기한테 카톡. "나 어제 밤샜어." "ㅋㅋㅋ 나도. 우리 숙명이야." "진짜 이러다 죽는다." "그래도 숫자 올라가면 기분 좋잖아." "...인정."새벽 3시 대시보드 앞에서 배운 건, 결국 공황 상태를 얼마나 빨리 벗어나느냐였다. 숫자는 거짓말 안 한다. 근데 해석은 내가 한다.
- 03 Dec, 2025
'예산 대비 효율이요' - 내가 제일 많이 말하는 문장
'예산 대비 효율이요' - 내가 제일 많이 말하는 문장 오전 10시, 광고주 미팅 "이번 캠페인 성과 어때요?" 광고주 마케팅팀장이 묻는다. 나는 노트북 화면을 돌린다. "예산 대비 효율이요, 지난달보다 15% 올랐습니다." 이 문장. 일주일에 스무 번은 말한다. 광고주 미팅, 내부 보고, 디자이너 설득, 미디어플래너 조율. 모든 대화가 이 문장으로 시작한다. 5년차 되니까 자동으로 나온다. 생각 안 해도.광고주는 숫자를 원한다. "좋았어요", "반응 괜찮았어요" 이런 말은 안 먹힌다. "ROAS 350%입니다. CPA는 8500원으로 떨어졌고요." 구체적 숫자. 비교 데이터. 지난달 대비, 전년 동기 대비, 목표 대비. 이게 내 언어다. 5년 전엔 이렇게 말 못 했다. 신입 때는 "성과 좋았어요!" 이랬다가 혼났다. 선배가 말했다. "얼마나 좋았는데? 숫자로 말해." 그때부터 배웠다. 느낌이 아니라 숫자로. 점심시간, 동기와 동기 지원이가 묻는다. "너 요즘 광고주 어때?" "예산 대비 효율이 좋아서 다행이야." 지원이가 웃는다. "너 그 말 입에 붙었다." 맞다. 붙었다. 집에서도 나온다. 남자친구랑 저녁 메뉴 정할 때도. "이 식당 가성비 좋아. 예산 대비 효율적이야." 남자친구가 한숨 쉰다. "너 직업병이야."근데 이게 우리 삶이다. 에이전시 AE는. 모든 게 효율로 환산된다. 시간, 돈, 노력, 결과. "이 디자인 작업에 3시간 들었는데 성과가 저거면 예산 대비 효율이 안 나와." "이 매체는 CPM이 높아서 예산 대비 효율이 떨어져." "야근 2시간 했는데 ROAS가 이 정도면 예산 대비... 아니 시간 대비 효율이 좋네." 심지어 야근도 효율로 계산한다. 병이다. 오후 3시, 내부 기획 회의 디자이너 수진 씨가 새 크리에이티브 시안을 보여준다. 예쁘다. 진짜 예쁘다. 근데 내 머릿속엔 숫자가 먼저 떠오른다. "이 작업 시간이 얼마나 걸렸어요?" "이틀이요." "이틀이면... 예산 대비 효율을 생각하면..." 수진 씨가 한숨 쉰다. "민지 씨, 또 그 말이에요." 미안하다. 근데 어쩔 수 없다.광고주는 예쁜 거에 돈 안 낸다. 성과에 낸다. ROAS 300% 나오면 못생겨도 만족한다. ROAS 150%면 아무리 예뻐도 불만이다. 이게 퍼포먼스 마케팅이다. 브랜딩이랑 다르다. 브랜딩은 감성으로 말할 수 있다. "이미지가 좋아졌어요", "인지도가 올랐어요." 근데 퍼포먼스는 숫자다. CPA, ROAS, CVR, CTR. 알파벳 네 글자로 모든 게 결정된다. 그래서 나는 맨날 "예산 대비 효율이요" 라고 말한다. 이게 내 방패다. 이게 내 설득의 시작이다. 오후 5시, 광고주 전화 광고주 담당자가 전화한다. "민지 씨, 이번 달 예산 500만원 더 쓰고 싶은데요." 심장이 뛴다. 좋은 신호다. "좋습니다. 근데 예산 대비 효율을 유지하려면 타겟을 좀 더 좁혀야 할 것 같아요." "왜요?" "지금 ROAS가 320%인데, 예산을 늘리면 효율이 떨어질 수 있거든요. 타겟 정교화하면 350%까지도 가능합니다." 침묵. 3초. "알겠어요. 그럼 그렇게 해주세요." 끊고 나서 안도한다. 이 한 마디가 500만원을 지켰다. "예산 대비 효율이요." 만약 내가 "네 알겠습니다" 하고 그냥 예산 늘렸으면? 한 달 뒤에 ROAS 250%로 떨어지고, 광고주는 화낸다. "왜 효율이 떨어졌어요?" 그럼 나는 변명해야 한다. 차라리 처음부터 말하는 게 낫다. "예산 대비 효율" 얘기를. 저녁 7시, 리포트 작성 주간 리포트를 쓴다. 첫 문장은 항상 똑같다. "이번 주 예산 대비 효율은 지난주 대비 8% 상승했습니다." 이 문장 쓰는 데 5분 걸린다. 숫자 확인하고, 비교하고, 계산하고. 근데 광고주는 이 문장만 본다. 나머지는 안 봐도 된다. "예산 대비 효율" 이 좋으면 만족. 나쁘면 불만. 그래서 나는 이 문장에 목숨 건다. ROAS 계산 세 번 확인한다. CPA 엑셀로 두 번 검산한다. 틀리면 안 된다. 이 숫자 하나가 내 신뢰도다. 5년차인데도 매번 떨린다. 리포트 보낼 때. "예산 대비 효율이 좋기를..." 기도하면서 전송 버튼 누른다. 밤 10시, 퇴근길 지하철에서 광고를 본다. 경쟁사 캠페인이다. 자동으로 분석한다. "저 소재로 ROAS가 얼마나 나올까?" "저 타겟팅이면 CPA가 1만원은 넘겠네." "예산이 얼마나 들었을까? 저 매체 집행비는..." 직업병이다. 완전히. 광고 보면서 쉬질 못한다. 효율을 계산한다. 남자친구가 옆에서 말한다. "너 또 일 생각하지?" "아니야." 거짓말이다. 생각하고 있었다. "예산 대비 효율이 저 정도면 광고주가 만족했을까?" 집에 와서도 생각한다. 내일 광고주 미팅에서 뭐라고 말하지? "예산 대비 효율이요..." 로 시작해야지. 이 문장이면 설득할 수 있다. 항상 그랬으니까. 주말 오후, 카페에서 친구들 만났다. 대학 동기들. 한 친구가 말한다. "나 이번에 옷 샀는데 50만원이야." 다른 친구가 놀란다. "비싸다!" 나는 자동으로 묻는다. "그 옷 몇 번 입을 건데? 예산 대비 효율이..." 친구들이 웃는다. "민지야, 너 진짜 직업병이다." 맞다. 인정한다. 모든 걸 효율로 계산한다. 옷, 밥, 카페, 심지어 친구 만나는 시간도. "2시간 만나는데 왕복 1시간 반 걸리면... 시간 대비 효율이..." 이러니까 친구들이 싫어한다. "너 좀 쉬어. 맨날 효율 타령." 쉬고 싶다. 근데 안 된다. 5년 동안 훈련된 습관이다. 뇌가 자동으로 계산한다. 일요일 밤, 침대에서 내일 월요일이다. 출근이다. 광고주 미팅이 두 개 있다. 머릿속으로 리허설한다. "예산 대비 효율이요, 지난주보다 12% 올랐습니다." "추가 예산 집행하시면 예산 대비 효율을 유지하면서..." "이 소재가 예산 대비 효율이 제일 좋았습니다." 모든 문장이 이 단어로 시작한다. 5년 동안 몇 번 말했을까? 하루에 20번. 일주일에 100번. 한 달에 400번. 5년이면... 24000번? 24000번 말했다. "예산 대비 효율이요." 이제 이 말 없이는 설득을 못 한다. 광고주도, 동료도, 상사도. 심지어 남자친구한테도 이 말 쓴다. "우리 이번 주말 제주도 가자." "비행기값이 얼마인데? 예산 대비 효율이..." 남자친구가 한숨 쉰다. "민지야, 여행은 효율로 재는 게 아니야." 맞는 말이다. 근데 나는 못 고친다. 이게 내 언어니까. 이 말의 무게 "예산 대비 효율이요." 겉으로는 단순해 보인다. 숫자 몇 개 말하는 거. 근데 이 한 마디에 내 5년이 들어있다. 밤새 돌린 캠페인. 새벽에 확인한 대시보드. 광고주 설득하려고 준비한 데이터. "예산 대비 효율" 하나로 모든 걸 증명해야 한다. 내 기획이, 내 실행이, 내 고민이 옳았다는 걸. 그래서 이 말은 무겁다. 가볍게 던지는 것처럼 보여도, 뒤에는 야근과 스트레스가 있다. ROAS 1% 올리려고 매체를 열 번 바꿔본다. CPA 100원 줄이려고 타겟을 스무 번 수정한다. "예산 대비 효율" 을 지키려고. 광고주는 모른다. 이 숫자 뒤에 뭐가 있는지. 그냥 "ROAS 좋네요" 하고 만족한다. 나는 "네, 감사합니다" 하고 웃는다. 속으로는 안도한다. '이번 주도 넘겼다.' 그래도 계속 말한다 내일도 말할 거다. "예산 대비 효율이요." 모레도, 다음 주도, 내년에도. 이게 내 일이니까. 숫자로 증명하는 일. 효율로 설득하는 일. 가끔 지친다. 모든 걸 효율로 재는 게. 사람 만나도, 밥 먹어도, 쉬는 것도 효율 계산한다. '이 시간이 예산 대비... 아니 시간 대비 가치가 있나?' 병이다. 알고 있다. 근데 이게 내 무기이기도 하다. "예산 대비 효율이요" 한 마디면 광고주가 끄덕인다. 이 말이면 상사가 승인한다. 이 말이면 내 기획이 통과된다. 그래서 계속 말한다. 입에 붙도록, 자동으로 나오도록. 이게 나의 언어다. 에이전시 AE, 민지의 언어.오늘도 말했다. 열다섯 번쯤. 내일은 스무 번 말하겠지.
- 02 Dec, 2025
ROAS 2배 올려달라는 광고주, 예산은 그대로다
ROAS 2배 올려달라고? 예산은 그대로인데 월요일 9시 30분. 출근했다. 피곤하다. 지난주 금요일 미팅에서 받은 메일을 다시 읽었다. 광고주 마케팅 담당자가 보낸 건데, 제목은 "다음 달 성과 목표 조정 안내"였다. 내용은 명확했다. ROAS 2배. 예산은 현재 수준 유지. 채널별 배분은 자유롭게. "자유롭게"가 웃겼다. 자유롭게 뭘 한다는 건데. 예산이 똑같은데 성과를 2배로 낸다고? 수학이 안 되는 건데도 마케팅에서는 가능한 줄 안다. 커피를 마셨다. 첫 잔이다. 오늘 하루에 몇 잔을 더 마실지 모르겠다. 대시보드를 켰다. 지난달 광고주 계정의 ROAS는 2.8배였다. 나쁘지 않은 수치다. 업계 평균이 2.5배인데 그보다 0.3배 높다. 그런데도 이 요청이 왔다. 왜? 광고주 상사가 경영진한테 뭔가 약속했나 봤다. "마케팅팀은 월 5% 성과 향상을 담당할 거야"라던가. 그리고 그 5%가 매달 누적되면서 결국 2배가 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나온 거다. 수학적으로는 맞는데, 마케팅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광고주한테 "그건 좀..."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이유 지난 세 해 동안 느낀 게 있다. AE 일은 곧 마법사 일처럼 여겨진다는 것. 광고주는 생각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도 성과가 2.8배니까, 좀 더 노력하면 3배, 4배도 가능할 거라고. 마치 마케팅이 직선 그래프처럼 올라간다고. 근데 우린 안다. ROAS는 매 광고에서 점점 낮아진다는 걸. 초반 1000원 쓸 때는 2800원을 벌지만, 계속 더 쓰다 보면 CPM이 올라가고 오디언스가 포화되고 CTR은 떨어진다. 그래서 3배를 유지하려면 예산을 줄여야 한다. 오히려. 근데 광고주는 안 본다. "성과 더 내세요"라는 말 뒤에는 항상 "예산은 지금대로"가 숨어있다. 어제 회의에서 미디어플래너 준호한테 확인했다. "준호, ROAS 2배 올리려면 예산 얼마나 줘야 해?" "대리님, 불가능하다고 했어요. ROI 그래프 보면 1억을 6월부터 4000만으로 줄여야 2배 다시 올라와요." "그럼 예산을 더 주면?" "그럼 ROAS는 1.5배까지 떨어진다고 했어요." 우리 에이전시 대표도 알고, 준호도 안다. 그런데 광고주 입장에선 "더 팔아야 하니까 광고도 더 돌려달라"가 되고, 그 광고를 더 돌리려면 예산이 많아야 하고, 그럼 자동으로 효율은 떨어진다. 악순환이다. 그런데도 나는 "검토하겠습니다"라고만 말했다. "그건 좀 어렵습니다"라고 못 했다. 왜? 광고주가 다음달에 예산을 4배로 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럼 ROAS는 또 내가 못한 탓이 되고, 담당자는 바뀌고, 모든 신뢰는 처음부터 다시 쌓아야 한다. 그래서 난 "검토"라고 했다. 검토라는 단어는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다"는 뜻이니까.숫자로 설득하려고 하는데 숫자가 자리를 안 잡아 회의 전에 자료를 만들었다. 1페이지: 지난 3개월 월별 ROAS 추이 (상승 그래프) 2페이지: 광고비 대비 실제 매출 기여도 (우리는 6500만원 광고비로 1억 8200만원 매출) 3페이지: 경쟁사 벤치마크 (업계 ROAS 평균 대비 우리 성과) 4페이지: 채널별 최적 예산 배분안 (5% 더 효율 낼 수 있는 시나리오) 숫자는 완벽했다. 그래프도 깔끔했다. 디자이너 혜진이가 예쁘게 만들었다. 그런데 광고주 담당자는 첫 장만 봤다. "ROAS 2.8배면 충분하지 않습니까?"라고 물었다. 내 대답은 준비되어 있었다. "현재 ROAS 수준을 유지하면서 추가 성장은 예산 증액이 필수입니다. 만약 예산을 유지하고 ROAS를 2배 올리려면..." 그 다음이 문제였다. 뭐라고 말해야 했다. "CPA 최적화와 오디언스 타게팅 고도화를 통해 시도해보겠습니다"? 이건 아무 의미 없는 말이다. 이미 3달 동안 다 해봤다. 오디언스는 더 이상 좁힐 수 없고, CPA는 이미 바닥이고, 크리에이티브도 4주마다 번갈아가며 테스트하고 있다. 그래서 난 말했다. "현실적으로는 어려울 거 같습니다만, 5% 정도는 개선 여지가 있을 것 같습니다. 대신 리스크가 있습니다." 광고주: "무슨 리스크요?" "만약 실패하면 ROAS가 현재보다 낮아질 수 있습니다." 그 순간 광고주 표정이 굳었다. 결론은 다시 "검토하겠습니다"였다.매달 같은 질문을 받는 이유 이게 처음도 아니고 마지막도 아닐 거라는 게 문제다. 이 광고주 담당자는 작년에도 같은 얘기를 했다. "ROAS 올려달라"고. 그땐 예산을 10% 줬다. 그럼 ROAS는 당연히 떨어졌다. 광고비 6000만원에서 6600만원으로 늘어나면서 CPM은 올라가고, 오디언스는 이미 본 사람들이 계속 나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2.9배에서 2.6배가 되었다. 그럼 또 "ROAS 떨어졌다"고 한다. 그때 우린 채널 변경을 제안했다. 네이버에서 구글로. 그럼 ROAS는 3.2배가 되었다. 그런데 도달 수가 줄었다. 그럼 또 "도달을 늘려달라"고 한다. 그래서 또 예산을 넣었다. 6개월 전 이 시점에 예산이 6000만원이었는데 지금은 7500만원이다. 그리고 ROAS는 2.8배다. 25% 더 썼는데 ROAS는 -3.4% 떨어진 거다. 그런데도 자꾸만 "더 해달라"고 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마케팅을 그래프처럼 생각하기 때문이다. 직선으로 올라가는 그래프. 근데 현실은 곡선이고, 어느 순간부터 수평선이 되고, 심하면 내려간다. 광고주는 그 곡선의 방정식을 모른다. 몰라도 된다. 근데 우리는 알아야 한다. 그리고 설득해야 한다. 근데 설득이 안 된다. 왜냐면 광고주는 AE를 결국 "비용 센터"로 보기 때문이다. "우리 매출을 올려줘야 할 책임이 있는 부서"로. 그래서 항상 더 많은 결과를 요구한다. 예산 대비. 시간 대비. 내 동기 준은 작년에 같은 이유로 번아웃 왔다. 광고주가 자꾸만 달라는 대로 하다 보니, 팀원들도 내내 야근하게 되고, 결과는 나오지 않고, 자존감이 떨어졌대. 지금 다른 회사로 옮겼다. 인하우스 마케팅팀으로. [IMAGE_4] 그럼 뭘 해야 하나 금요일 오후 3시. 이 광고주 담당자한테 전화를 걸었다. "ROAS 2배에 대해서 말인데요,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범위가 있어요. 5% 정도. 그런데 그것도 리스크가 있고요. 혹은 예산을 증액해주시면 현재 ROAS 수준을 유지하면서 더 많은 매출을 만들 수 있어요." 광고주: "그게 무슨 뜻인가요?" "지금 6500만원으로 1억 8200만원 매출을 만들고 있는데, 예를 들어 7500만원으로 가면 2억 2000만원 정도 매출을 만들 수 있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ROAS는 2.7배 정도 될 거고요." "...더 많은 매출이 목표니까 그게 맞는데, 위에선 효율을 원하셔요." "그게 문제예요. 매출을 원하면 예산을 주셔야 하고, 효율을 원하면 매출을 약간 포기해야 해요. 동시에 둘 다 하기는 불가능합니다." 침묵이 있었다. 그 침묵이 5초쯤 됐을 때 광고주가 말했다. "상사분하고 얘기해보고 연락드릴게요." "좋습니다." 끊었다. 이제 며칠을 기다려야 한다. 광고주 상사가 뭐라고 할지. 예산을 더 줄지 현 수준에서 ROAS 5% 개선을 받아들일지. 아니면 다른 에이전시로 바꿀지. 에이전시 하는 입장에선 항상 이 불확실성 속에서 살아간다. 근데 하나 느낀 게 있다. 이번엔 좀 다른 것 같았다. "더 해주세요" 대신 "우리가 뭘 원하는지 확실히 하세요"라는 답변이 나왔기 때문이다. 혹은 내가 처음으로 명확하게 "그건 불가능하다"고 말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IMAGE_5] 매달 고민, 매달 현실 이제 거의 야근 시간이다. 8시가 되려고 한다. 리포트를 마무리하면서 생각했다. 이게 반복되는 건 왜일까. 광고주도 나쁜 사람이 아니다. 그냥 위에서 시킨 일을 해야 한다. 나도 나쁜 사람이 아니다. 그냥 광고주가 시킨 일을 해야 한다. 그런데 그 사이에서 계속 "더 해달라", "조금 더", "내일까지"가 반복된다. 에이전시 5년 차인 지금, 이직을 생각하는 가장 큰 이유가 이거다. 불가능한 요청을 계속 받고, 그걸 "검토하겠습니다"로 받아주고, 최선을 다한 뒤에도 "부족합니다"라는 말을 듣는 반복. 근데 인하우스로 가도 마찬가지일 거다. 위에서 계속 "더"를 외칠 테니까. 그래서 다음달에도 같은 광고주 담당자로부터 같은 메일을 받을 것 같다. "다음달 ROAS 목표 조정..." 그리고 난 또 "검토하겠습니다"라고 할 거고.예산 없이 성과를 원하는 건 마케팅이 아니라 기적을 바라는 거다.